내 뜨락에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빈 가슴을 채우는 건, 어린 시절의 동화 같은 그리움뿐이다.

하얀 도화지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기 위해, 이제 막 보라색 크레파스를 집어 든 어린 소녀의 모습이 봄 햇살에 눈이 부시다.

바로 어제 같은데….

어느새!

세상 속으로 한발 한발 떠가는 발자욱 소리가 무겁게 내리는 겨울의 하늘을 둔탁하게 흔든다. 내일이면 오늘 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일개미처럼 부지런히 오가던 도심으로 뚝뚝 비가 내린다.

눈물처럼.

노곤했던 하루는 소주 한잔에 빗물 속으로 질펀하게 드러누워, 뱅뱅 돌아가는 세상을 핏발선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다. 아니, 세상이 도는 게 아니다. 내가 어지러운 게지.

모피로 휘휘 감은 몸들을 싣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도심 속에서 언 손과 발로 동동 거리던 하루해를 목젖으로 간신히 넘기고, 오들거리던 나목들도 어둠에 가녀린 몸을 드러내지 않은 이 겨울 저녁에.

그저 애타는 마음만 붉다 못해 서릿발로 곤두서는 새벽을 향해 달려간다.

부스스 아침이 열리면 날개 짓을 시작한다.

그리곤 마법의 하루를 기대한다.

당신은 내일이 있는가!

오직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 할 뿐이다.

/육정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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