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려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나 거실로 나왔다. 턱을 괴고 앉아 가만히 수족관 속을 바라다보니 금붕어들이 잠은 언제 자는지 나보다 먼저 일어나 꼬리를 흔들고 반긴다. 고요함 속에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 가 본다.

-배 려

비단이를 만난 것은 20년 전, 이 곳 아파트로 이사 온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3학년인 막내 녀석은 학교 앞에서 200원을 주고 사 가지고 왔다며 빨간 아기 금붕어 한 마리가 든 봉지를 내밀었다. 수족관에 넣어 주며 이름을 비단이라 부르기로 했다. 비단이는 낯을 가리는지 한쪽 구석에서 겁먹은 눈으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떠 있었다. 그 뒤 서서히 어울려서 같이 헤엄을 치며 살아가는가 싶더니 어느 날 아침, 배를 약간 뒤로하고 숨을 할딱거리기 시작했다. 막내 녀석은 학교 갈 생각도 잊은 채 비단이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는 다 죽게 마련이라고 안심을 시켰으나 어린 막내가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른 금붕어가 한 쪽 구석에서 자기 등으로 편안하게 비단이의 등을 떠 받쳐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 비단이를 떠 받쳐 주고 있어요. 비단이를요"

너무나 놀랍고 신기하여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러나 며칠 후 비단이는 애석하게도 떠나고 말았다.

자기의 등을 내밀어 비단이를 떠 받쳐 주던 금붕어의 배려.

그 일을 두고 두고 이야기 하려 했지만 나는 한 동안 그 일을 잊고 살아 왔구나.

-원망도 않은 채

지난 날 비단이를 생각하며 한동안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요즈음 우리 집 거실엔 수족 관 옆에 놓아 둔 난에 꽃이 만발하였는데 그 중 한 줄기의 난이 고개를 돌려 어항 속을 들여다보며 활짝 웃고 있는 것이었다. 함께 깍궁 놀이를 하고 있는 듯 서로 마주 보고 반긴다.

"아하! 그래서 오늘도 어항 속의 금붕어들이 일찍 일어나 춤을 추고 있었구나."

거실을 빙 둘러 보니 춤추고 노래하는 행복의 바이러스가 온 집안에 가득하다.자세히 보아 주지 않고 그냥 무심코 넘긴 날들을 "바빠서 그러려니"하고 그들은 주인을 원망도 않은 채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수족관 속에는 다른 비단이들이 신나게 춤을 추고 있다. 그래, 우리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살아가자꾸나.

/진영옥 새터초 교장·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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