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한 시간쯤 차를 타고 더위를 피해 모처럼 가족들과 냇가로 갔다. 제법 큰 하천이라 지난해 왔을 때에는 물이 깊어 위험했던 곳인데도 바닥을 거의 드러내고 있었다.

어느덧 7월도 중순이고 절기(節氣)로는 초복 무렵이다. 예년 같으면 장맛비가 한창일 때이지만, 올해는 장마철이 되고 태풍이 와도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는다.

이례적인 마른장마로 우리 고장에도 가뭄이 심각하다. 한창 무성하게 자랄 농작물은 가뭄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머지않아 벼이삭이 나올 시기인데 논바닥이 갈라지는 곳도 있다. 충청권 식수원인 대청호 수위도 크게 낮아지고, 녹조가 심하다니 걱정이다.


 책을 읽을 때도 글을 쓸 때도 라디오는 좋은 친구다. 텔레비전도 좋지만, 라디오는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오늘도 단비를 기대하며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여 본다. "북태평양고기압이 엘리뇨로 약해져 장마전선이 북상하지 못하고 제주 인근에 위치함에 따라서…." 현재로선 이번 주말 남부지방에 장맛비가 좀 오는 반면, 중부지방은 흡족한 비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렇게 기다리는 장마도 만약 지나치면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큰 피해를 주는 무서운 재해로 이어질 수 있으니 모든 것이 알맞은 것이 좋다는 평범한 진리도 느껴본다. 며칠 전 새벽에 단잠을 자다가 '후두둑'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반가운 소나기가 내려 잔뜩 기대를 했더니 금방 그친다. 그래도 가끔이라도 소나기가 오고, 옛날보다 수리시설이 잘 돼 이만큼 가뭄을 극복할 수 있다.


 얼마 전, 고향에 있는 밭에 들깨를 심을 때도 비가 오지 않아서 무척 힘들게 심었다. 고랭지 채소도 타산이 맞지 않고, 고라니 같은 산짐승까지 농작물을 해쳐서 경작할 사람이 없어 직접 해야 한다. 비올 때를 기다리다 깻모는 커가니 할 수 없이 물을 주며 심어야 했다.


 다행히 도랑물은 부족하지만 마르지는 않아 양동이로 물을 떠다 주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이 사정을 알고 바쁜 농번기인데도 연세도 많은 친척분이 경운기를 몰고 와 물을 퍼줘 수월하게 심을 수 있었다. 고향의 정과 상부상조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 고마운 분이었다. 내년에는 밭을 부칠 사람이 있길 바라며,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할 일이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베풀자고 결심했다.


 문득 불교대학에서 배운 것이 떠올랐다. 우리가 존재하려면 관계를 잘 유지돼야 하고,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희생이 필요하고 희생하는 방법은 보시이고 베푸는 것이다. 보시는 참으로 공덕이 크다.
 

 보시를 함으로써 우리의 아집(我執)도 같이 사라지는 효과도 있다. 보시를 할 때는 귀하고 아끼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하고, 인과법을 철저히 믿으면서 보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마른장마였다. 머지않아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예보가 있는데, 조용히 흡족하게 비가 내려 생명수가 되고, 수해 없는 고마운 장마가 되길 바란다.

/김진웅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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