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적 폭행으로 숨진 윤일병 사건 이전에도 폭행치사, 자살, 총기난사 사건이 계속 발생했지만, 군 검찰과 헌병대는 늘 사고의 내용을 은폐하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여왔다. 부대 간부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병들을 윽박지르거나 회유해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이번처럼 적나라하게 사건의 실상이 드러난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매번 입으로만 병영문화 개선을 외칠 뿐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군 검찰을 비롯해 기무사령부, 헌병대 등 군 사법경찰 기관들이 제대로 기능해왔다면 과연 군 내부의 적폐가 굳게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지금같은 상황에서 전쟁이 난다면 군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하사가 병장더러 '형님'이라고 부르는 '당나라군대'가 전장에서 '돌격 앞으로!'라는 소대장의 명령을 복종할 것인가부터가 의문이다.

또 어떤 부대에서는 탄약을 지급하면 적을 쏘기 전에 총부리를 선임병 고참병들에게 들이대고, 자동으로 놓고 발사할 것이라는 우려도 한다. 자폭과 자중지란으로 무너질 거라는 예상이다. 이런 군대로는 전쟁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주한 미군사령관이 "한국군 가운데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부대는 특전사 하나밖에 없다"고 말했다는 얘기가 10여년 전부터 나돌고 있다. 그는 우리국민 대다수가 믿는 '무적의 해병대'에 대해서도 "그저 현상유지 하는 정도"라고 봤고, 나머지 부대는 믿을 수 없다(지리멸렬할 것)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군이 병사들의 안위와 전투력보다는 보직 유지, 징계 모면, 승진, 연금 보장 따위에 관심이 높은 군 장교들이 지휘하고 있는 군대라는 인식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들은 이번 사건에서도 생뚱맞은 행태를 보여 비난을 사고 있다. 28사단 현장 조사를 나가서 부대원들 모아놓은 자리에서 "여기 있는 병사들 고생하니 포상휴가 보내라"고 선심쓰듯 큰 소리친다.

연대장은 즉각 "넵!  4박5일 보내겠습니다"라고 답한다. 옆 내무반에서 동료 병사가 몇달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맞아 초구검에 이르렀는데도 모르고 있었고, 연병장에서 맞는 것을 봤으면서도 아무도 신고 하지 않아 결국 이 가엾은 동료 병사가 죽임을 당했다. 같은 부대원이라면 그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없지 않은데 무슨 휴가 잔치를 말하는지 답답하다. 국회의원들은 뭐가 신이 나서 휴가 보내라고 큰소리치고, 기념촬영을 했을까. 자기 자식이 거기서 죽었다면 그런 말이 나왔을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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