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와도 같은 마음은 물이 담겨져 있을 때에 비로소 고요할 수가 있는 것처럼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라야 자신의 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물처럼 고요한 마음을 담고자 한다면 마음의 그릇을 먼저 만들어야 하고, 그 그릇의 양쪽으로 탐욕과 성냄의 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탐욕과 성냄을 스스로가 다스릴 수 있을 때 끓어오르는 욕심을 막아낼 수가 있고 타오르는 성냄을 다스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연후라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어리석은 마음에게 지혜로움의 청정을 보여줄 수가 있다. 한편, 맑은 운성(運性)을 마음속에다가 간직을 해서 자신의 지혜로움을 밝게 하고 밝은 지혜 속에서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가치로운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의 마음을 머물게 하지 못한다면 스스로가 방종과 노닐 수밖에 없고 방종은 오직으로 빗나가고 오직으로 벗어나기를 즐겨하며 오직으로 멀어져가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방종은 자신 안에서 구하고자 하는 진실 된 것이 없고 구하고자 하는 성실한 마음이 하나도 없는 매우 혼란스러운 마음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을 구할 수가 있을 때라야 자신의 인생에서 참다움이 있고 보람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생각을 없애면 하나의 마음도 없어지고 하나의 욕심을 없애면 또 하나의 탐욕도 없어진다.

이러한 자신을 간직할 수가 있을 때 자신의 내면에 부드러운 마음이 생기고 차츰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이 있으며 차츰 드러나는 지혜도 있는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고요한 마음이라 하고 고요한 마음속에서 편안함과 풍요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고 성공한 삶이라고 하며,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고 스스로가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구(求)하는 것들을 노력의 대가 마냥 생각하기가 쉬우나 그 실상을 보면 밖에서 구해지는 어느 것이라도 자신의 삶에서 수단이 될 뿐이지 그것들은 인생의 행복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이니 명예니 재물이니 아름다움이니 하는 모든 외부적인 사항들은 나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사항이 아니다.

다만, 어제는 당신이 그것들의 수단이 됐었고 오늘은 내가 그것들의 수단이 됐을 뿐이지 내가 나라는 존재의 의미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 존재의 의미를 가로막는 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운성(運性)은 안에서 구하려는 자신의 의미가 되고 가치가 되며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이 되고, 근본이 되며 원리가 되는 것이다. 마음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인격을 낳고 인격은 내 운명을 낳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만사 모두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는 것이다. 마음 한번 잘 먹으면 그것이 천당이요 극락인 것이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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