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아날로그 방식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게 되고, 그 결과 우리의 생활이 나날이 편리해지고 있다. 인터넷 뱅킹으로 은행을 방문할 필요가 없어졌고, 제자리에서 기차표를 살 수 있고, 버스 도착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SNS를 통해 소통이 원활해졌고 온라인 결제로 집에 앉아서도 쇼핑이 가능하게 되었다. 각 분야의 디지털화는 국가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아날로그 세대인 중장년층은 디지털의 속도감과 복잡함을 따라가기 버거워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청소년들은 여러 가지 온라인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미덕인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사회가 디지털화 되면서 덩달아 서비스 제도도 많이 향상되었다.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유통업계의 고객 서비스 제도는 선진국 수준에 가깝다. 특히 환불제도는 고객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사측의 잘못으로 고객에게 불편함을 준 경우는 소액의 자사 상품권을 증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고객보다는 자사 위주의 서비스 정책을 실시하는 곳도 적지 않다. 필자는 최근 한 서점에서 책을 구입했는데 다음날 일부 불필요한 책을 환불하려고 문의했다. 그런데 환불은 당일, 교환은 다음 날로 정해져 있어 사실상 형식적인 환불정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읽고 환불 또는 교환을 고의적으로 행하는 얌체족들 때문에 그 피해는 대부분의 선량한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대형 금융기관의 고객 서비스 제도도 아직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보안에 관한 일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편이다. 그 결과가 최근 문제가 된 개인정보 유출 사태다. 또한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는 고객에게는 보안 프로그램 설치 작업이 여간 번거롭지 않다. 미국의 경우 고객의 정보 보호와 편리함을 위해 기관이 직접 보안 프로그램을 개발, 설치하기 때문에 고객은 로그인만 하면 편리하게 인터넷 뱅킹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금융 사고가 발생하면 기관이 최대한 배상해주는데, 이는 기관의 고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서비스 정책은 근본적으로 고객보다는 기관의 이익이 우선이며, 통상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인 고객의 몫이다. 근본적으로 고객에 대한 사랑과 신뢰 없이는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기 어렵다.
 

최근에는 현명한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여기는 대기업의 횡포에 뿔난 일부 소비자들이 외국으로부터 직접구매를 하고 있다. TV의 경우 직접구매를 통해 세금과 배송비를 제하고도 30-40만 원 정도 싸게 살 수 있다. 이제 애국심에 호소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서 양심쯤은 팔아버릴 것 같은 태도에 소비자들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을 찾게 된 것이다. 보다 만족스러운 서비스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측과 고객, 상호간에 신뢰가 밑받침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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