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메타바이오메드 상무이사] 지방에서는 연극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족집게로 시간을 뽑아내듯 겨우 틈을 내서 수요일 저녁에 청주 메가폴리스 극장으로 향했다. 혼자 연극을 보는 호사를 누리고 싶었다. 옆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세상으로 침잠하고 싶었다. 타인과의 소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과의 소통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만나러 무대 앞에 앉았다.
 

음악이 흐르고 깜깜한 무대가 페이드인 되며 주인공이 등장하자 살짝 놀랐다. 평상복 차림으로 인사를 나누었던 단아한 모습의 이미영씨가 아니었다.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고 여기는 할망구 같이 구부정한 델마가 무대를 열었다.
 

아버지의 권총을 찾아 '나 오늘 자살할거야'로 시작된 연극은 서로에 대한 삶의 태도를 돌이켜 보게 한다. '죽을까 말까'의 선택을 넘어 구체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연극 내내 이어진다. 제시의 행동을 농담처럼 받아들였던 델마도 딸의 행동이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가자 '자살선언'이 의미 없는 발언이 아니었음을 눈치 챈다.
 

평소 딸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델마는 딸이 세탁기 돌리는 방법과 우유를 배달하는 방법, 시장 보는 방법 등을 나열하자 덜컥 겁을 먹는다. 자신이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한 걱정으로 만류하지만 제시는 단호하다.
 

어디에서 멈추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산다는 게 도무지 즐겁지가 않아. 더 나빠질 걸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지쳤어. 상처받았고 슬퍼. 이용당한 기분이야." 이것이 제시가 죽으려는 이유다. 그리고 제시는 죽음을 선포한 이후에야 비로소 엄마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만 모르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제시는 죽음 앞에 한걸음 더 가까이 걸어간다. "네가 알아서 좋을 게 없으니까! 제시, 다 널 위해서야." 간질, 이혼, 아들의 가출, 아버지의 병 등 모든 것은 제시에게 일어난 사건이지만 델마는 사실을 외곡 함으로서 제시를 현실로부터 격리시켰다.
 

함께 살면서 늘 그랬던 것처럼 딸의 처지에서가 아니라 엄마 위치에서 생각한 말과 행동이었다.
 

제시는 비록 간질을 앓고는 있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가족들은 감싸주고, 대신 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정했던 시간이 되자 '잘자요 엄마' 라는 말을 남기고 제시는 방으로 사라진다. 잠긴 문을 두드리며 엄마는 절규한다.
 

다시 문을 열고나올 것이라 믿었던 델마는 총소리를 듣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무너진다.  '제시야 용서해 다오. 나는 네가 내 꺼 인줄 알았어' 라고 말하며 연극은  막을 내린다. 
 

나도 지금 나의 가족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며느리 셋이 머리에 떠오른다. 시어머니가 '갑'이라는 생각까지야 언감생심 해본 적은 없다.
 

그러나 며느리들이 가장 불편한 존재로 대다수 시어머니가 지목되는 상황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리라. 남편과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은 누구를 위한 최선일까. 지나간 우리들의 대화를 연극 대사처럼 읊조리니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다.
 

'잘자요' 멀리 달아난 잠을 부르며 내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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