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

[충청일보]영화 '명량'과 함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10년 만에 재방송되며 열풍을 일으켰다.

아이들도 식상해하는 위인전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에 온 국민이 열광하는 연유가 무엇일까.
 

올바른 리더십과 인간다운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한 갈망이다.

선조와 조정대신, 이순신, 원균, 이들이 맞물려 갖는 미묘한 심리적 갈등에서 오늘의 정치현실을 본다.

이순신의 불패신화는 이영남을 비롯한 휘하 장수들과의 끈끈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이순신과 운명을 함께 한 이영남장군은 진천사람이다.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한때 원균을 도와 왜적을 방어하기도 했지만 후에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휘하로 들어가 연전연승하다 노량해전에서 죽음을 같이한 강직한 장수였다.
 

이영남장군의 묘역 앞에 서서 마지막 불꽃같았던 노량해전을 다시 그려본다.

전투의 치열함은 차라리 현란한 피의난무였다 할 수 있었으리.  
 

"장군,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분이 장군이셨습니다./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분도 장군이십니다./ 진정으로 장군을 닮고 싶었습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이순신장군의 품에서 마지막 고백을 토하고 있는 이영남장군이다.

진정으로 존경하고 닮고 싶어 했던 장군의 품에서 운명하는 그에게 이순신은 '자네는 가장 훌륭한 장수였다'며 손으로 눈을 감겨주고 자신의 갑옷을 벗어 덮어준다.

전쟁 중에 장수에게 있어 갑옷은 목숨이다.

목숨과도 같은 자신의 갑옷을 부하에게 덮어준다는 것은 목숨을 나누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바다는 나의 피도 원할 것이다" 갑옷도 입지 않은 채 분연히 일어나 미친 듯이 적을 쫒는 이순신 역시 왜적의 소총에 온몸이 벌집이 된다.

두 장수는 노량해전에서 그렇게 장렬히 전사했다. 
 

언제부터인가.

이영남장군의 사당 충용사 뒤편으로 소나무와 참나무, 각기 다른 물성의 두 나무가 한 몸이 돼가고 있다.

한 나무는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몸을 왜군의 칼받이로 바친 이영남장군이고, 또 다른 나무는 전장에서 자신의 목숨인 갑옷을 벗어 죽어가는 부하에게 덮어준 이순신장군의 형상이다.

그들은 그렇게 목숨을 같이하며 연리목이 됐다. 
 

연리목은 이웃한 두 나무의 줄기가 서로 맞닿아 하나의 세포가 되어 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어느 연인이 있어 마지막을 이리 애틋하게 한마음으로 갈 수 있겠는가.
 

소나무는 한겨울에도 독야청정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 지조를 나타내는 충의의 나무요, 참나무는 목질이 단단하고 구황식물인 도토리를 지닌 나무중의 진짜 나무, 민초를 위한 나무다.
 

장군이 잠들어 있는 이곳에 소나무와 참나무가 연리 되어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닐 터이다. 더구나 우리 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 역시 소나무로 건조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실제 소나무와 참나무는 세포의 종류와 배열이 서로 달라 부름켜가 연결될 수 없기 때문에 연리목이 되기가 쉽지 않는 물성이라 한다.

그럼에도 그 둘이 한 몸으로 포개져 살아가고 있는 저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진정 목숨을 나눌 만한 사람을 가졌는가.'

우수수 갈잎이 내려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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