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유일 무형문화재 대목장 신재언씨

▲ 나무 표면에 먹긋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지붕과 기둥 사이에 앉혀진 다포. 장중하고 화려한 구조가 한옥의 멋에 정점을 이룬다.

조부 서예가·부친 목수… 유전 입증 <br>입문 8년 만에 홀로 작은 사찰 '뚝딱' <Br>연기·불꽃 활용 치목기법 특허 취득 <br>건축물 설계도면 전승 보전 등 추진 <br>전국 각지 50여채 건축… 인재 육성도

 

[충주=충청일보 이현 기자]나무와 흙과 돌을 다스려 기둥을 세우고 다포(多包: 기둥과 지붕 사이 구조물)를 올리고 기와를 얹기 50년. 충북도 최초이자 유일무이의 대목장 무형문화재(충북 무형문화재 제23호) 보유자 신재언 명인(67)이 오늘도 한옥 처마 아래에서 옷깃을 여민다.

 

신 대목장이 대목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집안 내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조부는 서예와 그림에 조예가 깊었고, 부친은 빼어난 목수로 가구와 가마, 상여 분야의 일인자였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와 눈썰미가 남달랐던 그는 부친을 따라 어깨 너머로 나무 다루는 기술을 익혔다.
 

큰 세상을 찾아 열 아홉살에 상경한 뒤에는 문화재 보수 공사를 경험하면서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한밤 중에도 고구마나 무를 깍고 다듬는 연습을 하는 불면의 날들이 이어졌다.
 

입문 8년 만인 27세 때 처음 혼자 힘으로 작은 사찰을 지었고, 35세에 스스로 수긍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한옥 앞에선 겸손해진다.

"전통 목조건축의 내면에 깃든 조상의 얼과 슬기, 멋을 깨달아야 전통 문화를 재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창조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이 일"이라고 신 대목장은 말한다.
 

사찰과 향교, 사당, 누각, 정자, 전통 한옥 등을 섭렵한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작업한다.

선친으로부터 배운 연기와 불꽃을 이용해 나무를 건조하는 방식은 그만의 독특한 치목(治木: 나무를 다스리는 모든 과정) 기법이다.

훈증을 거치면 살균·살충·방부 처리가 한꺼번에 이뤄짐은 물론,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줄어 내구력을 높이는 좋은 목재로 거듭나게 된다. 지

난해에는 이 기법으로 발명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건축물의 설계를 직접 맡는 것도 신 대목장의 특징이다.

그는 일반적인 대목장과 달리 설계도면을 직접 그려 시공하며, 20여 년 전부터 그린 도면을 줄곧 보관해 전승 기재로 사용하고 있다.
 

도내에서는 충주 법정사 묘법보궁 요사채와 청주 보현사 대웅전, 괴산 다보사 대웅전과 화암서원 본사당 내외삼, 제천 경은사 대웅전 등이 그의 손을 거쳤고, 강원 동해의 지상사, 경기 포천의 호국금강사, 안양 불성사, 전남 무안 약사사, 경북 포항 대성사, 경남 마산 자비정사 등 전국 각지에 50여 채의 전통 목조건축물을 세웠다.
 

지금도 현장에서 먹통과 먹칼을 잡고, 충북자치연수원과 한국교통대, 중원대 등에서 '대한민국 전통 건축물의 역사와 구조' 등을 강의하며 전통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있다.
 

신 대목장은 "전통 건축물에는 한민족을 지탱해 온 유가·불가·도가의 인간을 중심으로 생명을 존중하며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정신이 온전히 담겨 있다"며 "전통을 담고 더 낫게 개선시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 전통 건축의 총괄지휘자 '대목장'
 

우리 전통 목조건축에서 나무를 다루는 목장(木匠)은 가구·창호·문짝 등 작은 목공일을 맡아 하는 소목과 집을 짓는 대목으로 나뉜다.

궁궐이나 사찰, 군영시설 등을 건축할 때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설계는 물론 감리까지 겸하는 도편수는 대목들을 지휘하는 대목장(大木匠)이 맡는 게 보통이다.
 

전통 목조건축에서 대목장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다.

목장으로서는 목재 선별부터 치목, 먹긋기, 바심, 조립, 결구 등 나무를 다루는 전 과정을 이끌고, 도편수로서 와장과 드잡이, 석장, 미장이, 단청장 등을 아우르며 건물의 설계부터 완성까지 모든 책임을 진다.
 

집터를 정하고 방향을 잡고 설계와 기술 지도 등 모든 작업을 조율하며 이끄는 전통 목조건축의 총괄 지휘자가 대목장이다.

이에 따라 목조건축이 발달된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때부터 도편수에게 높은 벼슬을 내려 왔다.

조선시대 세종 때 숭례문 재건을 맡은 도편수는 정5품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된 대목장은 신 대목장을 비롯해 전국에 7명 뿐이다.

 

▶ 4대를 이어가는 대목의 길
 

신 대목장은 전통 목조건축 외길을 걸어오며 몸에 익힌 건축기법을 후계자들에게 전승해 맥을 잇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 자신도 조부 신성집(1877~1954)과 부친 신혁묵(1921~1968)의 뒤를 좇아 나무를 다뤘듯, 50년의 세월을 건너 3명의 전수자와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전수자 가운데 이연훈씨(57)는 문화재수리기능자로 등록됐고, 손정화씨(49)도 문화재기능인증을 취득해 전통 목조건축의 길을 동행하고 있다.
 

또 신 대목장의 둘째 아들인 태선씨(41)가 15년 전부터 대목에 입문, 전수장학생으로 대를 이어 가고 있다.
 

아버지의 손에서 아들의 손으로 건네지는 4대에 걸친 장인의 대물림이 믿음직스럽다.
 

태선씨는 "아버지를 따라 처음 나무를 접했을 때도 그랬고 시간이 흐를수록 배워야 할 것이 더 많게 느껴지지만,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할 때마다 뿌듯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부족하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목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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