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알람이 나를 깨운다. 눈을 몇 번 껌벅 거리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본다.
 

몸이 참 정직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전날 늦게 잠들거나 음주라도 한 날이면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루가 밤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늦은 밤 7080콘서트 TV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는 유혹을 물리치고 나에게 충전 가능한 시간을 가늠한다. 최소한 6시간, 여유 있으면 7시간 쯤 충전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라이프 사이클로 확인한 터다. 젊어서야 넘치는 힘으로 며칠 밤 쯤 대충 넘겨도 됐지만, 너무 오래 부려먹은 탓인지 이제는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느낌이다.
 

밤과 새벽의 습관이 내게 주어진 하루를 좀 더 활기차고 여유 있게 지탱해준다는 것을 알아차린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는 혁신을 하지 않는다.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따위를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함'이라고 정의하는데 그러려면 충격적이고 과격한 개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기간의 무리한 다이어트가 실패로 끝나고 '작심삼일'이 되는 것은 혁신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작은 변화를 통해 살살 구슬려 가며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날까 말까, 머리를 감을까 말까, 회사를 갈까 말까'를 매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 순간 엄청난 정신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저절로 되게 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혁신이라고 생각한다.
 

몇 달 전에 비해 혁신적인 하루를 보내는 것이 혁신 때문이 아니라 작은 변화 때문이었다는 것을 경험했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몇 가지 정보를 얻어냈다.
 

회장님과 사장님이 매일 5시경에 출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특별히 바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으로 아침 7시에 일어나던  나로서는 난감한 소식이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6시 이전에 출근하자는 목표를 정했다. 그건 혁신이었다. 며칠 만에 나가떨어질 수도 있는 계획이었다.
 

취임하기 한 달 전부터 하루에 5분씩 알람을 늦췄다. 정확하게 4시30분에 알람을 맞추는 날, 첫 출근을 했다. 의식은 지속되고 있었지만 생체리듬은 거기까지 따라와 주지를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4시30분에 일어나는 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됐다. 그 대신 잠자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요즘 같은 연말분위기에서 밥만 먹고 슬쩍 몸을 빼내는 일은 왠지 낙오된 기분까지 들 지경이었다. 그래서 한 두 번 분위기에 응해주느라 만취한 날은 다음날 일정에 몰입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럴 때마다 확신한다. 나에게 밤은 새벽을 밝히는 등불 같은 시간이라고. 임원으로 보내는 하루는 소진에 가깝다. 그러기에 완전히 탈진하기 전에 몸을 어루어 마중물 같은 밤을 보내 줘야한다.
 

적당히 덥혀진 이불속에 노곤한 몸을 묻으며 지나온 하루에 감사를 보낸다. 날마다 다시 시작하는 밤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 느긋함이라니. 저절로 웃음이 난다.

/유인순 메타바이오메드 상무이사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