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상을 당한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늦은 밤 문상을 한 후, 상주인 친구와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소천하신 분은 아흔 한 살이시라니 호상이라고 생각했다. 상주는 위로 누님들이 있고, 막내 외동아들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살아왔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구는 선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마음만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신에게 잘한 것에 대한 칭찬보다는 못한다는 꾸지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시절에도 학교에서 보내온 성적표를 보고 반가운 표정을 하신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은 매우 향상된 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아버지는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지으시거나 꾸지람만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는 평생 아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간직하고 살았다고 했다. 그에게는 한 번이라도 자신을 칭찬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나이 오십이 넘을 때까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3-4년 전부터 친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정말 싫어해서 칭찬에 인색한 것이 아니라, 자식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버지 나름대로 달랐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동안의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노력한 지가 불과 2-3년 밖에 되지 않았던 차였다.

친구는 자신이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좀 더 일찍 알게 되었더라면, 아버지와 더 정겨운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더 기막힌 사연을 이어갔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에 오랫동안 혼자 사셨다고 한다. 수년 전부터 자식 된 도리로서 아버지 혼자 사시는 오래된 집을 새로 지어드리려고 말씀드렸지만, 아버지께서는 그냥 그 집에서 살겠다고 하시며 개축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웬일인지 지난해에는 흔쾌히 신축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참 기쁜 마음으로 아버님이 사실 집을 지어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의 아버지는 그 집에서 꼭 3개월만을 사셨다. 저녁에 일상처럼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셨는데, 아침에 문안 인사차 방에 들렀을 때는 이미 돌아가셨던 것이다.

상주인 그 친구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사실 집을 새로 지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자식이 살 집을 새로 마련한 후 집이 괜찮은지 3개월 동안 확인해 주시고 조용히 눈을 감으신 것이라고, 그것을 돌아가신 후에 이제야 알았다고 말이다.

짧은 시간 동안 친구가 던지는 몇 마디 말에 나는 가슴이 찡하게 저며 오는 것을 느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모르다가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친구의 얼굴 한편에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는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자식에 대한 사랑의 밝은 빛도 은은히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았다.

상주와 헤어진 후 나는 차안에서 한 동안 깊은 상념에 빠져있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평생 지속된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부모는 자식에 대한 깊은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으로 보이신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부모의 깊고 넓은 마음을 알지 못하고 평생을 살다 가는지도 모른다.

이제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음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부모님들의 깊은 마음을 새길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다. 부모님은 우리가 그 분들의 마음을 알고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곁에 남아 주시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 자신도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평생 그들에게 힘이 된다. 가능하면 긍정적인 마음과 밝은 표정으로 자식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해야겠다. 혹시 너무 부정적으로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식에 대한 관심의 표현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깊이 성찰해볼 시기다.

 

▲ 윤건영 충북 교총 회장·청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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