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작가 17 - 민병동

14년동안 외면했던 길. 작가는 지금 여행 중이다. 무한한 그림을 펼칠 수 있는 캔버스를 찾아서, 그리고 관람객들에게 그러한 공간제공을 위해서….
그의 여행은 일상생활에서의 여행이 아니다. 작업과정을 통한 작품은 새로운 작업으로의 시작이요 여정이다. 올해 보여준 작품은 내년에 보여줄 작품의 사전메시지인 것이다.
조각가 민병동씨(42·사진). 언제 작업이 마무리될지 모르지만 꿈을 이뤄가는 여정이 지루하지 않다. 딱히 시간에 대한 조급함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틀도 정해놓지 않았다.

작가는 지난 5월 다양한 돼지작품을 선보여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메인으로 등장한 작품 '말하다(akfgkek)'. 이 작품은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몸통을 하고 있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돼지는 뼈도 내장도 없다. 두뇌는 더욱 없다. 꼬깃꼬깃 구겨진 신문지 덩어리가 들어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부정확한 정보가 판을 치는 세상과 그것을 여과없이 전달하는 언론의 무책임함을 꼬집는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적당하게 섭취하지 않으면 폭식으로 이어지고 끝내 소화불량에 걸리고 만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돼지에 천착한 것은 똑같은 존재가 담고 있는 상반된 이미지 때문이다. 돼지는 우리에게 다산과 재복, 부유를 상징하는 긍정적 이미지인 동시에 '뚱뚱하다' '미련하다' '게으르다' 처럼 부정적 의미로 통용된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점철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는 무한개념의 가능성을 찾았다.
지난 1일부터 청주 용암동 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보여주고 있는 작품 '변화(variety)'는 환경문제와 인간의 무한책임에 대한 문제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작가는 검은 그물망으로 관람객들에게 길을 인도한다.
오른쪽에는 검은 비닐의 쓰레기 봉투가 산재해 있고 그 반대편에는 아직 사용되지 않은 깨끗한 비닐이 있다. 이들 비닐은 모두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들에 의해 사용되거나 사용될 것들이다.
하지만 그 편리는 언제까지 인간에게 순응하지만은 않는다. 과학적 지식으로 만들어진 비닐들은 인간들의 환영을 받으며 사용되지만 환경에 대한 공격을 시도한다. 작가는 비닐을 통해 옳다고 생각한 인간의 지식, 편리성이 끝까지 옳았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어두침침한 길 끝의 검은 문. 그 문을 열면 한사람이 겨우 설 수 있는 세모공간에 양쪽으로 두 개의 문이 나타난다. 왼쪽문을 열면 성조기 속 별을 형상화한 투명하고 깨끗한 비닐들이 보여지는데 환경오염원을 가장 많이 사용한 강대국과 그들의 사회적 책임을 암시한다. 작가는 그렇게 사용하고 있는 자와 사용된 것들, 사용될 것들은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과연 무엇이 옳은지를 고민케 만든다.
민병동은 이 작품을 통해 모티브 변화를 추구한다. 문화활동과 매체활동이란 것들이 몇세기 지난 후세에서도 몇백배 불편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인 셈이다.
또 다른 쪽의 문을 열고 들어선 길은 2층으로 이어진다. 2층에는 반짝이는 작은 전구와 제멋대로 비대칭이거나 크기가 다양한 별들이 나타난다.
그는 한 인간이 이미지화 한 그림 중에 가장아름답게, 철저하게, 새롭게, 창조적으로 창작한 이미지, '별'에 집중한다. 그는 이를 매개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착시는 인류의 행복을 극과 극으로 인도하고 있음을 재 조명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현재 미술, 그림, 시각이라는 근본이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하고 그것에 인간의 본 모습이 내재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작가는 고민한다. 생각하는 즐거움을볼 수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한번 더 생각을 하면 표현된 것들의 존재자체가 근원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표현 근거는 무엇일까를.
근원에 대한 물음이기도 한 고민에 대해 그는 "별의 형태에 우리들의 잘못되고 있는 사회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눈으로만 보고 실제 모양인양 별의 형태를 꾸며 놓고 아름답다, 혹은 영롱하다고 할 수 있을지 시각적 이미지를 생각하는 자리"고 말한다.
민병동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체공간을 분할하고 그곳에 별을 통해 우리의 삶을 삶 중에도 특히 환경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그 중에서도 정신의 구조적 해석을 하고자하나 아직은 준비가 못 된 관계로 환경의 순환을 풀어가겠다는 것이다. 하나의 캠퍼스는 전시장의 공간이 될 것이고 거기에 한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는 자연환경의 오염, 모순의 주체를 인간으로 바라본다. 이성(理性)오염으로 명명된 이것들은 한편으론 인간의 성적혼란일 수 있다. 그리고 동식물의 생식기능의 혼란이다.
끝없는 문제의식과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의 선택, 앞으로 민병동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졌다.
/글=이성아기자·사진=노수봉기자
<스피드 인터뷰>

청주 용암동에 위치한 청주시미술창작스튜디오 104호. 50㎡(약 15평) 정도의 작업실은 독특하다. 한쪽 벽면에 합판을 대고 무명실로 네모반듯한 바둑판을 만들었다. 진열장 대용인 그곳에는 그가 8년동안 창고 속에 넣어두었던 작업도구들이 빼곡이 걸려있다. 대부분이 학창시절에 사용하던 것들로 붓과 커터, 정, 망치, 장갑 등이다. 부모님이 사용하셨던 저울도 있고 동그스름한 테의 안경도 있다.

-대학 졸업 후 14년동안 작업을 중단했었다.
"졸업 당시 전업작가로의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막노동으로 재료비를 마련하고 싶지도 않았고 라면만을 먹으며 살 자신도 없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생계하고는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안주했다."
-그토록 주저하던 작업을 다시 시작한 계기는.
"동갑내기 여학생을 가르치게 됐다. 제자이자 동료인 그는 내 안에서 억눌리고 있던 뜨거움을 끌어냈다."
-'돼지'와 '별'이라는 주제를 모티브로 정했는데.
"엄밀히 돼지는 소비자인 관람객들을 위한 것이고 별은 전문컬렉터를 위한 것이다. 이상과 현실을 둘다 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형이상학적이어도, 형이하학적이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설치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내 작품은 설치작품이 아니다. 일부 유사한 성격일 뿐 조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치작품을 폐치처분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을 제대로 보관하거나 소비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을 재설치 방법과 함께 하나하나 상자에 넣어 상품화하는 서양과에 비해 아쉬운 일이다." /이성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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