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형 김천대 교수

[김기형 김천대 교수] 중국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원수처럼 미워하고 그 백성들도 서로를 미워했다. 손자(孫子)의 구지편(九地篇)에서 손자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난다면 이들은 원수처럼 맞붙어 싸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고사는 적의를 품은 사람끼리라도 필요에 따라서는 서로 도울 수 있다는 뜻이다.
 

서로의 감정이 좋지 않거나 이해가 상충돼 서로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도 함께 타고 있는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거센 풍랑을 만난 경우에는 아무리 서로가 원수라도 일단은 서로 도와 배를 살리고 봐야 할 것이다. 만일 서로의 깊은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자신의 이익에만 집착해 풍랑에 잘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함께 탄 배는 결국 침몰해 둘은 바다에 빠져 죽고 말 것이다. 
 

충청권은 현재 충남도가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고 대전시에 남아있는 옛 충남도 청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의 핵심은 옛 충남도청사 옆에 있는 충남도경찰청사다. 충남도청이 내포로 이전되면서 충남경찰청도 함께 내포로 이전했다.
 

이에 대전시는 충남경찰청사를 옛 충남도청청사의 활용 계획에 포함시켜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청은 원래 충남경찰청사는 경찰청의 건물이므로 대전중부경찰서가 너무 비좁아 업무에 막대한 불편을 겪고 있으므로 대전중부 경찰서가 대전에 남아 있는 충남경찰청사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전시는 시민들에게 경찰청 부지를 포함해 충남도청사를 문화 공간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에 맞서 경찰청은 대전중부경찰서 공간이 비좁아 민원인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으므로 옛 충남경찰청사는 중부경찰서가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양측 모두 대전 시민을 위해 마음을 쓰고 있으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의 대립이 첨예하다. 지역 문화 단체들은 대전시의 입장에 서서 문화 공간 활용을 주장하고 경찰청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데 대전시나 경찰청 모두는 대전 시민들에게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물어봤으며,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시민 공청회 등을 열었는지 궁금하다.
 

충남도청사와 충남경찰청사의 활용 문제는 '시민'을 앞세워 관계 당국이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역시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
 

양측이 각각의 부지에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이 부지의 주인은 관계 당국이 아니라 대전 시민임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대전시와 경찰청은 현재의 의견 대립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설령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이 타당한 것이지만 서로의 주장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갈등으로 치달은 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대전 시민임을 알아야 한다.
 

손자의 말대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이 미워할 수 도 있지만 풍랑이 불 때는 협동해 배를 살려내는 것처럼 대전시와 경찰청이 대전 시민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시민을 볼모로 서로의 주장만을 고수한다면 배는 결국 침몰하거나 물 위를 표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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