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장

우리는 일상에서 감정이 상하거나 힘들 때는 가끔 영화 속의 아름다운 한 장면을 기억해내고는 한다. 그 중에서 멋진 장면 하나는 시야가 확 트인 넓은 공원에 있는 나무 그늘 앞에 의자가 있는 풍경이 아닐까 싶다. 이것은 대자연의 아름다운 품안에 안겨 위로받고 나아가서는 마음의 평온을 가져올 수 있는 편안한 여유를 같고 싶어서 일 것이다.

 

 '나무와 의자'라는 시가 생각나는 봄의 초입이다.

 

나무 그늘 앞에 의자가 있는 풍경

때가 되면

나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어머니 잔소리가 거름 되어 튼튼한 나무가 되었지만

나를 깎아

의자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해

사람들 서성이다 떠나가게 한다.

 

우연한 모임에서 이 시의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동작이 큰 언어 몸짓과 투박하면서도 거침없는 표현이 낯설어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던 기억이 있다. 후에 시인이 보내준 시집의 주제가 어머니와 자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주 책장에서 꺼내어 읽어보곤 했다. 어머니 품이 넓은 마당 같아 터를 잡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때가 되면 밥상을 물리고 일어서듯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 떠나가는 현대인의 안타까운 모습을 투박하지만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기억된다.

 

필자에게는 얼마 전 늦은 나이에 충북 괴산 학생군사학교에 입소한 아들이 하나 있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여 신촌 홍대거리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후에 동영상으로 공연하는 모습을 보니 열심히 준비하여 나름대로 성공적인 연주를 하였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뭉클하였다. 부모들이 걱정할까봐 기말고사 준비하는 와중에 스스로 공연비용을 마련하고 연습하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공연하는 일에 시간을 빼앗겨 자칫 학업을 소홀히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조금 지나 생각을 해 보니 산업화시대에 삶의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기울이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였다. 당시 편안한 의자하나 만들지 못해서 서성이다 떠나가게 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아쉬움에 편안한 나무 의자 하나를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제 필자도 인생의 반환점을 훌쩍 넘긴 위치에 서 있는데, 지금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자기 안에 머물러 있다면 삶이 너무 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울타리를 넘어 어려운 이웃에게 어두운 사회와 위기의 환경에 관심을 가진다면 더 나은 삶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잘 산다고 하는 것은 재력과 명예와 권력이 아니라, 이웃들과 함께 소박하게 웃으며 칭찬하고 삶의 향기를 나누는 일이다. 작은 노력이라도 이웃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단 한사람의 삶이라도 행복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보다 많이 가지려고 하며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절망하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이웃들이 경제적 빈곤에 허덕이고, 육신의 고통에 시달리며 영혼의 상처에 울고 있다. 이들이 얼마나 사랑에 목말라하는지 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요즘 세상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마음에 따뜻한 눈이 없으면 사랑이 필요한 자리가 절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사회적 환경에 상처받고 지친 소중한 자녀들과 삶의 현장에서 소외되어 사회적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이웃들을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한 때이다. 영화 속의 풍경처럼 아름답고 넓은 공원에 마음 편하게 다가와서 앉아 쉴 수 있는 나무 그늘 앞에 의자가 생각나는 시간이다.

 

▲ 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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