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 3·1 만세 운동 주도
애국 인사 '최고형' 받았는데
서훈은 가장 낮은 '3등급'
대통령 헌화 제외… 개선돼야

 

[서울=충청일보 이득수기자] "유관순 열사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충분한 조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1운동 기념일이나 유 열사 기념일에 대통령의 헌화도 안 되고 있어요. 지금 대통령 뿐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한 분도 헌화를 한 적이 없습니다."
 

유관순기념사업회 이혜훈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유 열사가 3·1운동 때 수 많은 군중 중의 한사람으로 참여했다가 희생된 것으로만 알고 있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마치 군부 정권 시절 데모군중 속에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가 경찰에 연행돼 고문당한 것 정도로 생각하는 현상인데 유 열사의 활동이 '군중 속의 일인'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유 열사가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했고, 며칠 후 3월5일 학생만세운동에 참여해 일본경찰에 연행된 것은 맞아요. 중요한 것은 서울에 있는 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진 후에 유 열사가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에서의 만세운동을 조직하고 이끈 주역이 됐다는 겁니다. 17살의 나이에 그 때 당시만 해도 여성들의 바깥 출입이 어려운 시절인데 어린 소녀가 얼굴을 가리고천안 연기 병천 등 충남 전체의 수십개 마을을 혼자 걸어다니며 각 동네 유지들을 만나 만세운동을 알리고 왜 필요한가를 설득했어요."
 

유 열사의 가열찬 노력으로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는 3000명이 넘는 군중이 참가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여기서 유 열사의 부모님은 모두 일제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시고, 유 열사는 총구를 향해 "이분들에게 총질하지 마라, 나에게 하라"고 외치며 체포됐다.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돼서도 옥중에서 수감자 3000명을 설득해 3·1운동 1주년인 1920년 3월1일 정오에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유 열사는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되고 순국한 것이다.
 

문제는 유 열사에 대한 공적 평가와 역사적 평가가 심히 부당하고 왜곡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 회장은 이 부분을 지적하며 하루빨리 정당한 평가와 예우가 이뤄져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과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처벌을 받았는데, 재판부는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유관순 열사에게 가장 무거운 5년형을 내립니다. 일제의 최고형 근거는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고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33인의 대표인 손병희 선생(3년형) 보다 높은 형을 받은 거요."
 

최고의 형벌에 혹독한 고문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한 제단에 목숨을 바친 유 열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너무 허술하고 빈약하다. 해방에 이어 대한민국이 탄생한지도 한참이 지난 1962년에야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이 이뤄졌다. 여기서 다른 3·1운동 관련 인사들은 모두 1등급이 주어졌지만, 일제가 재판과정을 통해 가장 공적이 크다고 역설적으로 입증해준 유 열사는 오히려 가장 낮은 3등급 판정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대통령의 헌화도 못 받는 지금의 현실로 곧바로 연결된다. 청와대 내규에 3등급에는 대통령의 헌화가 제외된다는 것이다.
 

헌화 문제는 이 회장이 보훈처와 청와대에 지속적으로 부당함을 알려 해결되는 듯 했지만, 올해도 그냥 넘어갈 조짐이다.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얘기는 "꽃값은 누가 내느냐"는 한심한 것이었다. 유 열사에게 헌화하면 다른 3등급 서훈자들도 벌떼처럼 나설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단세포적인 인식이란 비판을 받을만하다.
 

"3등급 서훈자는 450명 정도 되는데 훈장을 받았지만 기념사업회나 추모제가 없는 분들에게는 대통령의 헌화가 갈 일이 없겠죠? 추모제가 있는 분만 해당되는데 그런 분들은 모두 20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 꽃값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5만 원씩 하면 100만 원 정도인데 그것 때문에 애국충정을 미래세대에 알리고 숭고한 독립정신을 심어주는 일을 포기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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