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은 상대방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고, 집착은 상대에 대한 관심이 도를 넘는 것이다.

그 중간인 관심은 상대에게 적절하게 마음을 쓰는 것이다.

관심이 모자라면 상대에게 무관심하게 되고, 관심이 지나치면 그에게 집착하게 된다. 무관심과 집착은 상대를 망치고 자신도 피폐하게 만들지만, 관심은 상대를 풍요롭게 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관심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관심이라는 명분하에 지나치게 강요하거나 명령하는 것은 집착이다.

집착은 상대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게 되면서 생기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의 자유를 박탈하기에 이른다.

지금 우리 사회의 한편에서는 자식의 무관심 속에서 어렵게 지내는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부모의 집착에 부담을 느낀 자식이 반항한다.

부모를 버리는 패륜아는 손가락질을 받고, 부모의 관심은 넘쳐서 자식을 병들게 한다.

무관심도 병이지만 집착은 더 심각한 질병이다.

한국 부모가 자식에게 집착하는 것은 그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분신이라 여기기 때문이며, 그것이 그를 무능아로 만들고 있다.

자식이 무엇이 필요한가 생각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그것을 제공함으로써 그의 생각은 멈춰 버린다.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고, 그 결과 그는 퇴화한다.

부모는 그것을 관심이라 여기지만 자식은 그것을 집착이라 생각한다.

한국 부모의 집착은 입신양명(立身揚名)을 강조한 유교문화에서 비롯됐다. 출세해 세상에 이름을 떨치기를 원하는 것은 자식을 위한 마음이라 하지만, 행여 부모 스스로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함은 아닐까. 무관심과 집착 사이 그 어느 지점에 적절한 관심이 존재하지만 그 마음을 내기가 쉽지 않다.

적절한 관심은 평정심에서 비롯된다. 평정심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상대를 지켜볼 수 있을 때 생기는 고요한 마음의 상태다.

평정심이 생길 때 비로소 무위(無爲)를 행할 수 있다.

무위는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위(人爲)를 가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다.

즉 무위는 인위의 반대다.

또한 '쓸모없는 쓰임'이라는 뜻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이 있다. 처음에는 아무 쓸모없는 듯 보이지만 결국 쓰임이 있다는 의미다.

무위와 무용지용은 장자사상의 핵심이며, 무용지용은 입신양명의 대(對)가 되는 개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인위가 아닌 무위를 보여주면, 자식은 입신양명은 못해도 무용지용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평정심을 내기도 유지하기도 말만큼 쉽지 않다.

이것은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고 매순간 깨어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평정심이 일어날 때 비로소 부모는 홀가분해지고, 자식은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 계절의 여왕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버이날, 어린이날, 부부의날이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일 년에 하루가 아닌 일 년을 하루 같이 적절한 관심으로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지켜주는 사람이 되자.

/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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