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어버이날이 되자 친구들과 공유하는 SNS마다 서로 자랑하듯 자식들로부터 받은 용돈 이야기와 선물 사진이 올라왔다. 부러움에 공연히 마음이 거슬렸다. 외국에 가 있는 작은아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침마다 함께 출근하는 큰아이도 직장 앞에 내려줄 때까지도 일언반구가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내가 부모님께 자식 노릇을 제대로 못 했으니 보고 배운 것이 없어서 저럴 것이다. 이제 고스란히 그 벌을 받나 보다.'

이런 생각으로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퇴근길에 큰아이에게 줄 선물로 옷을 샀다. 필자를 어미로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현관문 앞으로 마중 나온 아이에게 옷을 건네주는데 감사하다고 화답을 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너무도 당당했다.

그러나 애써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책상 위에 꽃바구니와 엽서와 돈이 담긴 봉투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온종일 가졌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며 호들갑스럽게도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어버이날을 맞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가족과 공유하는 카톡방에 이런 글을 남겼었다. '자식 노릇, 부모 노릇을 잘 하지는 못 했지만, 어버이날을 맞아 마음이나마 가족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라고. 글을 보고 뒤늦게 자극을 받았을까, 아니면 요즘 아이들답게 저녁이 돼서야 부모님의 생일을 챙기는 풍조 때문일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근래 어느 글을 통해 등골브레이커라는 신조어를 대하고 나니 등골이 오싹했다. 이 말은 부모님의 등골을 부서뜨린다는 뜻을 가진,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신조어였다. 등골이 휘도록 일을 하고 자식을 키운다는 말도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데 이에 더해 등골이 부서뜨린다니, 자식의 입장으로 이 말을 해석하자면 자식은 졸지에 죄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았으니 당연히 최선을 다 해 키워야 하는 것이 부모 도리인데 그것을 등골이 부서지고 휘도록 해야 한다고 묘사하는 것은 정말 못마땅하다.

설령 훗날 자식이 서운하게 한다 해도 등골 휘도록 일해서 키웠다는 말로 탓을 하지 않을 것이며 내 도리를 다 했을 뿐이라고 위안할 것이다. 왜냐면 눈앞에 이루어지는 부모와 자식 간의 도리와 관계가 나날이 부정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전반적인 사회현상이라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쓸쓸한 노후가 될 것이 뻔해서다.

이제는 어린 자식과 부모를 둔 가장들이 오히려 자기들의 등골이 휜다고 엄살이다. 어린 자녀를 둔 세대는 어린이날을 맞은 자식에게 고가의 선물을 사줘야 하고, 어버이날을 맞으면 부모님도 모른 척할 수 없고, 스승의 날을 맞으면 본인의 스승 뿐 아니라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에게도 선물을 챙겨야 하니, 박봉의 가장에게 5월은 등골이 휘는 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과도한 선물 공세가 기념일을 제정한 의미는 분명히 아닐 것이다. 뒤늦게 어버이날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논의가 있는 것도 어버이에 대한 봉양을 물질로만 척도를 잴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가지며 가족 사랑을 돈독히 해보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계절의 여왕인 5월이 본연의 자리를 잃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각종 기념일의 참된 의미도 다시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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