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연한 봄날이다. 무덕무덕 토해놓은 연록의 산야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차오른다. 때맞춰 귀한 손님이 찾아들었다는 소식이다. 쉽게 대면하기 어려운 손님인지라 그를 맞으러 나섰다.
 

장월들 앞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백곡천변에서 유유히 노닐고 있는 모습이 눈에 잡힌다. 늘씬하게 잘 빠진 선홍빛 다리하며, 길게 흘러내린 흰 목선의 부드러움은 선 고운 조선여인을 연상케 한다. 하얀 몸통에 까만 꽁지깃털과 길고 곧은 검은 부리는 당당하면서도 단아한 선비의 기품이 느껴진다. 합죽선 펴듯 2m에 달하는 날개폭을 쫙 펼치고 비상하는 모습에서는 호걸장수의 품격과 아름다움이 함께 엿보인다.
 

천연기념물 199호인 황새다. B-49, 허벅지에 신분증을 달고 날아든 황새의 이름은 '미호'다. B-49라는 개체번호로 인해 교원대 청람황새공원 소속임과 함께 지난해 4월에 집을 나간 세 살배기 암컷임이 밝혀졌다. 
 

그녀의 곁에서 맴돌며 따르는 녀석은 '진천'이다. 진천이는 야생으로 올해 처음 발견한 임영섭 사진작가가 지어준 이름이다. 꽁지깃털과 날개 끝 깃털의 검은색이 흐린 것으로 보아 두 살 안팎의 수컷으로 추정한다. 미호보다 연하인 셈이다.
 

암수 구별은 목과 가슴 윗부분 깃털의 길이로 하고 나이 들어감에 따라 꽁지깃털과 날개 끝 깃털의 검은색이 점점 짙어진다고 한다. 하나둘 찾아든 새 박사들은 진천이가 아직 미성년자일지, 성년이 됐을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이 둘의 사랑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황새는 현재 세계적으로 12속 17종으로 국제 자연보호연맹의 적색(赤色) 자료목록에 부호 26번으로 등록돼 있는 국제보호조로서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1급으로 지정됐다.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텃새이기도 했을 만큼 친근하고 길하게 여겨왔다. 그러던 것이 한국전쟁과 그 이후 1960년대에 이르는 동안 밀렵과 산업화로 인한 환경파괴 등으로 멸종의 위기까지 닥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발견된 황새부부의 애닮은 사연은 아직도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지난 1971년 4월 음성에서 황새 한 쌍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떴고, 3일 만에 밀렵꾼의 총알에 의해 수컷이 사망했다. 홀로 남은 암컷은 남편을 잊지 못해 매년 봄이면 그들이 살던 마을을 찾아든다. 남편 없이 번식하지도 못할 무정란을 낳고 품기를 12년, 쇠약해진 몸은 끝내 농약 중독에 이르게 된다.
 

겨우 구조해 지난 1983년 서울대공원에서 사육하면서 인공번식을 시도한다. 시베리아에서 수컷을 데려와 신방을 차려줬지만 모두 거부하며 죽은 남편에 대한 지조를 지키다가 1994년, 홀로 된 지 23년 만에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이 땅에서 사라져간 황새는 가끔씩 보이기는 했지만 어디에서도 제대로 오래 머무르지도, 자연번식도 하지 못했다. 집나간 미호가 야생의 연하남과 함께 찾아든 곳이 진천이다. 살아서 살만한곳, 생거진천은 새들의 세계에서도 소문이 번진 것인가.
 

두 달 가까이 머물며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 B-49 미호와 진천, 이들의 사랑이 대대손손 예서 터 잡을 조짐으로 이 봄이 더욱 밝고 빛난다.

/김윤희 수필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