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관리학과 교수

일본은 올해 과학 분야에서 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함으로써 기초과학분야에서도 세계 강국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본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강이지만, 우리를 의아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노벨상 수상 기념 강연을 해야 할 한분이 영어가 되지 않아 고민이라는 언론 보도이다.
지금까지 1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확실히 강국이고 선진화된 나라이다. 그런 일본인들이지만 세계 공용어라고 하는 영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는 서툴거나 잘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위축되지 않는 것이 우리와는 다른 점이다. 설사 영어를 잘 한다고 해도 겉으로는 내세우지 않는 것이 일본 사람들의 이중적 특징 아닌가. 반면, 우리나라는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지금까지 사회 전반이 온통 미국식으로 채색되었다.
인간의 의식과 태도 변화를 주도하는 교육 분야에서부터 미국 이론의 무차별 수용으로 미국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실 한국은 그동안 세계 최강의 나라를 착실하게 베낀 이유로 지금과 같은 수준의 경제력이라도 갖추게 되었는지 모른다. 일본 역시 개화기에는 미국을 열심히 배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 특유의 사무라이 정신으로 자존심을 지켜냈다. 그런 일본과 달리 우리는 영어를 못하면 기가 죽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우상으로 자리 잡았으며, 사회 체제는 주로 미국 유학자나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출세하기 쉽도록 재편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한국적인 것은 점점 소멸되어 이제는 한국과 한국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찾기도 어렵게 되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나라이지만, 지도층 인사가 영어 몰입교육을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등 영어 때문에 사회 전반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이다.
그러나 자세하게 살펴보면, 과거 미국과 영국 두 나라에 의해 식민지화되었던 나라들 중 호주·캐나다·뉴질랜드를 제외하고 경제적 부를 누리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십 개 나라들은 미국이나 영국의 식민지 경험 탓에 영어는 잘 구사하지만 여전히 경제적 빈곤에 빠져있다.
때문에 우리가 문화적 측면에서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은 오히려 프랑스·이탈리아·일본·중국 등과 같이 자기 나라 언어를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있는 경우라고 하겠다.
최근 한 조사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출판에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영어 28%, 중국어 13%, 독일어 12%, 프랑스어 8%, 스페인어 7%, 일본어 5% 등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영어의 사용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지배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사회 지도계층에서부터 영어를 맹신하고 미국을 따라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맹신이 사회 전반에 생각이 다른 집단 간에 갈등구조를 만들어 내면서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쟁국인 일본은 너무 다르다. 그들의 정부는 미국과 친할지언정 국민의 주체성만큼은 확실히 일본적인 것을 고집하고 있다.
일본이 영어 교육 때문에 사회가 시끄럽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일본을 비롯한 프랑스·중국·이탈리아 등 선진국 국민들은 다른 나라 말은 보조적으로 사용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뚜렷하다.
그들이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 학자들은 영어를 통하여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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