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와 자연 담은 또다른 음식 '식기'

젊은 도예가 20 정철호

만화가 허영만 원작의 영화 '식객'은 최고 요리사가 되기 위한 두 청년의 피 말리는 대결을 그리고 있다. 다양한 요리정보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 만점의 스토리, 게다가 현란한 요리솜씨와 당장이라도 먹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음식들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이밖에 조문탁과 장국영 주연의 '금옥만당'에서는 무술과 요리의 화려한 랑데부를 통해 아름답고 진귀한 중국의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은 한국 최고의 스타 출연과 함께 궁중음식의 진미를 사극 판타지로 보여주면서 중국 일본 태국 등에 한류열풍의 주역이 된 바 있다.

▨'맛'이'멋'으로,'밥상'이'예술'로
음식을 테마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미각과 후각, 그리고 시각을 자극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구를 표출시키고 대리만족시키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국의 문화적 특징을 음식이라는 화두를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스토리의 다양성과 문화적 가치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함께 음식의 '담음새'를 통해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시각적인 다양성을 흥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재미라 할 것이다. 담음새란 음식을 담는 그릇과 그릇의 다양성을 일컫는다. 예쁘고 맛있는 음식,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역사적 가치를 온 몸으로 체휼하는 특별한 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다. 음식을 담는 그릇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을 눈으로 먹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그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함축적인 콘텐츠가 음식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음식을 담는 그릇들이 플라스틱이거나 기계로 찍어낸 공산품일 때 느끼는 마음이다. 반면에 그릇과 음식과 장식이 서로 색과 소재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 만들어 내는 식탁을 만날 때는 오감이 짜릿할 정도로 마뜩한 생각을 갖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식탁위의 예술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행운을 얻는다. '맛'이 '멋'으로,'밥상'이 '예술'로 변하는 순간이다.

▨ 한국의 사계를 닮은 생활미학 표현
도예가 정철호(33·사진)씨는 말 그대로 젊은 작가다. 나이도 젊고 생각도 젊으며 작업세계도 젊다. 초라한 배고픔을 황홀한 기다림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생활문화에 녹아들지 않은 그릇은 진정한 그릇도, 문화의 일부도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철호는 생활미와 조형미의 균형감을 강조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도자기를 공부했다. 청주의 한 도예가 공방에서 3년간 동고동락을 하며 흙을 만지고 도자기를 빚었다. 삼척산업대학교 도예과에 입학한 뒤 4년간은 줄곧 우등생이었다. 고등학교 3년이라는 세월을 흙사랑에 몰입했기 때문이다. 강원도관광상품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하는 등 대학기간에 4차례에 걸쳐 공모전 수상을 한 것이 그의 활동과 능력을 말해주고 있다.
2005년에는 청주시 상당구 서문동에 20여 평의 작은 공간을 얻어 공방을 차렸다. 공방이름은 ‘토모공방’이다. 이곳에서 그는 학교 후배이자 부인인 노정숙씨(31)와 함께 작업활동을 하고 있다.
남편이 물레를 차면 부인은 그림을 그렸다. 꽃, 나비, 야생화 등 자연의 숨결로 가득한 모습을 그렸다. 다양한 색상, 다채로운 기법,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능미를 가감없이 표현했다.
이 때문에 그의 그릇은 이 땅의 어느 하늘아래 오방색 물결로 사계절을 수놓은 시골풍경을 보는 듯하다. 겨울에는 눈꽃이, 봄에는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가 무진장 펼쳐지고 꽃망울이 눈부시도록 피어난다. 녹음으로 우거진 여름에도 찔레꽃이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솔잎향의 그윽함과 이름 모를 들꽃의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가을의 들녘은 온통 형형색색 물감으로 색칠을 하고 한 쪽에서는 어느 노승의 차 향기 같은 그윽함도 느껴진다.
정철호씨의 식기를 보면 이처럼 때묻지 않은 자연을 만나게 된다. 그의 식기에 음식을 담으면 생명력으로 가득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자연과 도자기,먹거리와 담음새의 하모니에 모두들 잔잔한 감동을 받는다.

▨ 도자는 시대의 거울이자 빛
일식은 일식기에, 양식은 양식기에 담아 먹으면서 왜 한식은 우리 그릇을 사용하지 않는가? 낯설게 생각하거나 의심해보지 않았던 문제를 작가는 고민하기 시작했고 한식에 어울리는 도자기를 빚게 된 것이다.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전통도자에 조형미를 가미시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들의 삶과 호흡하지 않는 전통은 무의미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선백자나 달항아리를 현대적인 조형미로 표현하기 위해 가시 돋친 복어 이미지로 변형한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작가의 젊은 생각, 젊은 감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생활공간에 개성을 더하고 예술적 가치와 혼을 불어 넣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화장실을 공예적으로 풀이할 수 있는 아이템을 구상중이다. 변기통, 세면대, 화장대 등 삶의 공간마다 새로운 패션을 창조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작가는 도자야말로 시대를 거울이자 빛이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도자의 다양성과 실용성, 도자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디자인과 색상과 함께 살아간다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입만 즐거운 게 아니고 눈과 귀, 코와 입,손과 발 등 오감이 즐거운 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한다.도자야말로 문화에서 예술로, 예술에서 삶으로, 삶에서 도시의 아이콘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변광섭 객원논설위원(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
작가프로필 △삼척산업대학교 공예과졸 △신사임당미술대전 금상, 강원도관관상품공모전 동상, 청주공예문화상품대전 입선 2회, 충북관광상품공모전 동상 △흙나무회원전, 충북공예특별전 등 단체전 다수 △현재 충북학생교육문화원 전문강사, 청주시 사직동 220-8 토모공방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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