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외국에서 오래 생활했던 사람들 특히 사회질서가 잘 정립돼 있는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 오랜 생활을 했던 경험자들이 공통적으로 걸리는 병이 있다.

일명 선진국병이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이 생활하고 익숙했던 환경보다 사회질서가 미진한 국가에서 느끼게 되는 불편함과 무질서함을 보며 느끼는 후진국병을 쉽게 경험할 수 있다.

15년 전에 한 일본인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경제는 1만달러, 의식은 100 달러'라는 키워드를 던졌다.

3만달러를 육박하고 있는 15년 후의 지금, 그의 눈으로 다시 한국을 바라본다면 어떤 일상과 마주하게 될까?

선진국병은 별다른 치료법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낫는다.

아니 낫는다는 표현은 거짓이며 불의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어려운 용어를 굳이 쓴다면 역동화(逆同和)를 거치면서 다시 한국인의 모습으로 변한다.

동화(同和)가 낮선 환경에 익숙해지는 것을 가리킨다면, 굳이 한국인이 한국에서 다시 동화를 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행위이지만, 길거리에서 어깨를 부딪치고 사과 대신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휙 지나가버리는 행동에 울컥해지다가 어느 순간 나 또한 같은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자동차가 설 것이라고 예단(豫斷)하고 길을 건너는데 엄청난 경적소리에 기겁을 한 얼굴에 듣기 민망한 욕설이 난무하는 모습에 익숙해질 때 다시 한국인으로 태어나게 된다.  

그 작가는 '비판'을 하면서 왜 '맞아 죽을 각오'라는 표현을 했을까?

15년 전의 한국사회는 어쩌면 비판(批判)과 비난(非難)을 구별할 정도의 의식수준이 아니었다고 작가는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시점에 서 있는 우리는 이런 비판을 비난으로 생각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 들일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일본과의 우호를 이야기하면 공연스레 친일(親日)로 매도하는 언론과 사회환경, 미국과 우호를 이야기하면 당연시(當然視)하는 사대풍조, 북한을 이야기하면 공연스레 백안시(白眼視)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제(日帝) 시절에는 '독립(獨立)'이라는 가치를 위해, 모진 이념세월 속에서는 '민주(民主)'라는 가치를 위해 우리 선조와 선배들이 목숨을 희생하여 값진 지금을 물려 받았다면, 이제는 '나와 우리'가 아닌 '너와 우리', '내가 먼저'가 아닌 '네가 먼저'의 기초질서를 바로세우는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한민족(韓民族)은 용맹스럽고 자랑스러운 역사, 찬란하며 지혜로운 문화유산, 불의에 굴하지 않은 전통이 있다.

남이 변하기를 외치기 전에,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자기타협, 자기관용과 이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바로 자의식을 바로 세우는 것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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