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불교대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 철학교수 윤한솔] 마음속에서 하나의 불꽃을 키우는 것과도 같은 것을 운(運)이라고 한다. 자신의 중심을 만들고 자신의 경(敬)을 유지하며 자신이 믿고 일어설 수가 있는 지팡이와도 같다. 마치 북극성을 중심을 하고 수많은 별들이 그 가는 바를 일정하게 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게 하며 그 혼란을 막는 것과도 같은 것을 운(運)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운명(運命)과 더불어서 일생동안 흥멸(興滅)을 함께하는 운은 애초부터 자신의 내면세계(內面世界)에서 존재를 하고 있던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외부세계에서 찾아오는 신령(神靈)스러운 기운이 아니다.

다만 꾸준한 노력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올바로 할 때에 천지간(天地間)에서 존재하는 신령스러운 기운(氣運)을 본인이 느낄 수가 있고 차츰 자신의 운과 천지간의 기운이 동화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안팎에서 아름다운 결실을 거두니 그 결실을 인화(人和)라고 하며 그 인화는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장 신령스러운 기운(氣運)이다.

어떠한 불협화음에서도 하나의 공리(公利)를 만들고 어떠한 이견(異見)에서도 공동의 의견을 찾아내는 것이며 어떠한 난관에서도 하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인화(人和)는 크고 작은 일에서의 해결에 열쇠가 되고 믿음의 씨앗이 담겨져 있으며 화합의 시초가 된다. 여기에서 인화의 토양은 믿음이 되고 믿음의 중심에는 수신(修身)이라는 뿌리가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수신(修身)의 정신이 없는 가운데에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서로가 자신들의 욕심만을 이야기하고 이익만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입장만을 이야기할 뿐이지 백일을 마주 앉아 대화를 하더라도 하나의 명분(名分)을 건져 낼 수가 없는 것이다.

한편, 이것을 천지간(天地間)에서 살펴보면 첫째, 만물이 그 뿌리를 지기(地氣)에다가 두는 까닭은 지기가 품고 있는 본래의 성정(性情)을 만물이 믿기 때문에 지기에다가 뿌리를 의지한다. 이와 같은 믿음은 물이 연못에서 고이는 까닭과도 같은 것이다. 반면에 연못은 물을 담았다가도 지나치면 스스로의 안위와 보존을 위하여 물을 흘러 보내고 부족하면 근검과 절약으로 연못을 채우게 된다.

둘째, 바람이 하늘에서 머무는 까닭은 좋은 것들을 널리 알려서 모범으로 삼고 나쁜 것들도 널리 알리고 경계로 삼으면서 만물의 생육을 공평(公平)하게 펼치기 위함이다.

셋째, 천지간에서 지극히 아름다운 것들은 이치를 닮아서 생겨났기 때문에 인화(人和)의 이치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인화는 하늘의 이치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즉 백성의 뜻이 지극할 때의 민심(民心)은 곧 천심(天心)이 되고 하늘의 덕성과 조화는 건(乾)의 이치가 된다. 그래서 인화(人和)는 천(天)의 이치(理致)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에서도 지극한 성인을 하늘처럼 우러르는 것이고 성인(聖人)의 도(道)를 즉, 하늘 이라고 한다. 그래서 성인에게로 만인(萬人)이 모여들고 만인이 허리를 굽혀 하늘을 우러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하늘의 이치를 자신이 키워 갈 때에 이것을 하늘이 도우며 또 다시 사람들이 그 사람을 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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