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일루셔니스트'(2011)는 실뱅 쇼메가 프랑스 감독 자크 타티에 오마주로 바친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인 가난한 떠돌이 마술사 타티셰프는 자크 타티 감독을 떠올린다.

바바리에 우산을 들고 상체를 앞으로 쑥 내밀며 껑충하게 걷다가 불쑥 멈추곤 하는 마술사의 모습에 윌로 씨라는 캐릭터로 자신의 영화에 등장한 타티 특유의 과장된 몸짓과 코믹한 풍모를 고스란히 씌워놓았다.

작품 속 단 한 번 스치듯 지나는 영화관 장면의 자크 타티 실사도 그에 대한 은근한 오마주다. 타티셰프는 스코틀랜드 한 마을에서 선보인 그의 마술을 진짜인 줄 알고 매료돼 몰래 그를 따라나선 순진무구한 소녀 앨리스를 거둬준다.

세상에 떠돌이 마술사가 발붙일 자리는 점점 없어지는데, 자기를 진짜 마법사인 줄 아는 앨리스가 예쁜 옷이며 구두며 조르자 그는 온갖 궂은일을 해서 그녀의 꿈을 이뤄준다.

그러다 우연히 앨리스가 사랑하는 청년과 행복해하는 모습을 목격한 그는 가진 돈과 'Magicians do not exist'라는 마지막 인사를 카드에 남긴 채 홀로 떠난다.

작품 내내 대사도 거의 없이 몸짓만 보여주던 마술사의 마지막 한 마디에 그만큼 쌓인 질문들이 스며나온다.

그는 왜 그렇게 썼을까? 자기를 뭐든 척척 만들어내는 마법사로 아는 그녀에게 환상을 깨워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였을까, 더 이상 마법사인 척하기가 버거워서였을까. 자신의 딸에게 남긴 감독의 편지 내용으로 만든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부모를 마치 마법사처럼 생각하는 자녀들에게 부모가 남몰래 겪는 희생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을까?

그러다 문득 일루셔니스트와 매지션이 뭔지 생각하게 된다.

액면 그대로 볼 때 일루셔니스트는 눈속임으로 '마술'을 부린다면 매지션은 실제로 '마법'을 한다.

현실에 매지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루셔니스트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타티셰프의 마술은 앨리스의 꿈과 행복을 '실현'해주었다.

마술은 어디까지나 환상이지만, 그 환상이 사람들에 웃음과 행복을 주고 삶을 변화시킬 때 마술은 역설적으로 마법이 된다.

이때 일루션은 무표정한 얼굴에 웃음꽃을 선사하기 위해 보이는 시야 뒤에서 바삐 놀리는 마술사의 손길이며, 꿈과 행복을 만들기 위해 삶의 무대 뒤에서 묵묵히 흘리는 인내의 땀이다.

일루션이 보이는 환상이라면 환상 뒤에 숨겨진 치열한 '현실', 그것도 일루션이다.

일루션이야말로 매직을 만드는 예술이다.

삶에 마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남몰래 훔치는 땀과 눈물의 마술이 없는 마법이 없는 것이다.

"Magicians do not exist"…"without illusion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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