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김천대 교수] 지난주 전북도 진안의 만나생태마을에 다녀왔다. 지난 아프리카 잠비아 봉사에 동행하셨던 신부님께서 농민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뤄 모여 살고 있는 그 마을에는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정겨움과 풍성함이 있었다.

하룻밤을 보내고 점심을 준비하고 있을 즈음 전주에서 판소리를 하시는 선생님께서 신부님을 방문하셨다.

신부님께서 전주에서 오신 판소리 선생님은 신부님의 소리 스승님이라고 소개하셨고 우리 일행과 판소리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판소리 명창답게 선생님의 입담은 좌중을 압도했고, 우리 일행 이야기 중간에 뽑아내는 아리랑 가락을 듣고 서로들 좋아했다.

선생님께서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음을 좋아한다고 하시자 수원에서 오신 치과 원장님은 치의학적으로 왜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저음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셨다.

선생님은 저음으로 말하자면 대금이 최고라고 말씀하시며 대금의 재료가 되는 쌍골죽(雙骨竹) 이야기를 하셨다.

쌍골죽은 말 그대로 대나무 양쪽에 골이 패어있는 대금을 만들기 위한 최고의 재료다.

하지만 이 깊은 소리를 내는 대금의 재료인 쌍골죽은 일반 대나무에 비하면 돌연변이인 병든 대나무, 즉 병죽(病竹)이다. 보통 대나무는 외형적으로 쑥쑥 잘 자라는, 우리가 흔히 보는 키가 큰 멋진 대나무지만 이 쌍골죽은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외형적인 성장이 멈추고 속으로 성장을 해 겉은 휘어지고 단단해져서 사람들이 원하는 모양을 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쌍골죽으로 대금을 만들 때는 단단하게 휘어진 이 '못생긴' 대나무를 펴는 일이 무척 힘들지만 힘든 만큼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맑고 깊은 소리를 낸다.

판소리 선생님의 쌍골죽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멀리는 진도 바다에서 속절없이 떠나 버린 어린 영혼들이 생각났고, 가깝게는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 싸늘한 주검으로 파도에 떠밀려온 세 살배기 에이란 쿠르디가 생각났다. 이 어린 영혼들은 어른들의 폭력과 탐욕으로 인해 성장이 멈춰 버렸다. 세상에 남겨진 다른 아이들처럼 즐겁게 뛰어놀고 웃어야 하는데 세월호와 함께 바다로 가버린 아이들과 파도에 떠밀려 주검으로 터키에 '망명한' 세 살짜리 어린아이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

그러나 세월호의 아이들은 대한민국을 내적으로 성장시키고 있다. 그 내적인 성장은 우리 눈에 띄지는 않지만 서서히 쌍골죽처럼 우리 사회를 단단히 성장시키고 있다고 믿고 싶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살아서 망명하지 못한 에이란 쿠르디도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는 데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던 여러 유럽 국가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쌍골죽으로 만든 대금 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 이 소리를 들으면서 흘릴 눈물은 마냥 슬픔에 젖은 것만은 아닐 것 같다. 세월호 아이들의 대금 소리와 에이란 쿠르디의 대금 소리는 마냥 세상을 울리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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