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진 청주시의원] 햇살은 눈부시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대지는 오방색 물결로 가득하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이 왔음을 대자연 속에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풍한설 속에서 생명의 자취마저 느낄 수 없었던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자연의 열매들이 알곡지게 여물고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단풍은 설악산에서부터 남녘을 향해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하나 둘 잎을 떨군다. 찬바람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세월의 덧없음에 슬퍼지기도 한다.

가을에는 곡식이 여물고 단풍이 물드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걸음도 바삐 움직인다. 시골에서는 가을걷이가 한창이고, 도시의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하루 해가 짧다고 여기며 가을 소풍에 분주하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의미 있는 삶을 만들겠다며 저마다 생활의 속도를 내고 있다.

내게도 가을은 바쁜 일상의 연속이다. 추석 연휴 기간에는 사회복지 시설을 잇따라 방문하면서 이웃의 아픔을 돌봤다. 척수장애인협회, 장애인펜싱협회, 라이온스협회 등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한가위에 음지에서 고생하는 이웃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고 따뜻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재래시장을 둘러보는 일도 내겐 일상이 되었다. 추석맞이 장을 보며 치열한 민생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대끼고 진한 땀내를 맡았다. 그곳은 아직도 가을의 풍성함이 비추지 않는 춥고 배고픈 곳이었다. 경기회복을 외치고 경제성장을 노래하지만 이곳을 찾는 서민에게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들의 땀이 헛되지 않기를, 언제나 삶은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며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가 현실이 되기를 소망했다.

아침저녁으로 골목길을 다니며 시민들과 인사하는 것은 이 가을뿐만 아니라 사시사철 시시때때로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민심을 읽을 수 있다. 생활 경제 사정이 어떤지, 정치에 대한 우려와 기대는 무엇인지, 지역 발전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시민들의 말과 눈빛과 표정을 통해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종지 꿈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정치가 무엇인지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축제 현장도 다녀왔다. 공예비엔날레에서는 낡은 담배공장에 예술의 옷을 입히고 세계인과 함께 하는 전시장을 둘러봤다. 비엔날레 행사장 바로 옆 건물은 국립현대미술관 수장 센터가 들어설 계획이고, 동부창고는 시민들의 문화예술 창작과 향유의 장이 될 것인데 한 바퀴 돌아보니 해야 할 일이 많고, 갈 길도 멀다.

청원생명축제도 문을 열었다. 각 지역마다 특산물을 들고 나온 사람들마다 희망의 빛이 역력했다. 통합청주시가 생명문화도시의 슬로건 아래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이 또한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가을볕을 따라 도시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만고불변의 진리를 느꼈다.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더 낮은 곳에서,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더 오래 부둥켜안자. 그리고 더 큰 미래를 향해, 더 높은 꿈을 일궈나가자. 황금빛으로 물든 대지의 축복처럼 이 도시에도 행복과 영광과 평화가 깃들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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