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후 부지런함과 절약으로 생활고 이겨내

⑮ 충북 음성 '된장아줌마' 김영란씨


연세 지긋한 어른들이 살아온 인생보따리를 풀기 전에 흔히 "3박 4일 얘기해도 다 못하고, 내가 살아온 거 책으로 쓰면 소설책으로 몇 권을 족히 될 것"이라고 운을 뗀다.
충북 음성에서 '된장아줌마'로 통하는 김영란(52)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난 32년간의 생활에 대해 "목숨 걸고 살아왔다"고 말할 정도로 질곡의 세월을 토해냈다.
남들은 혼자 밥 먹을 상황이 생기면 간단한 식사로 대신하거나 아예 식사를 포기해 버리지만 김씨는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인터뷰 하던 도중 시집간 두 딸의 중학교 은사가 '지나다 들렀다'며 농원을 찾아왔다.
딸들이 학교를 졸업한 지가 16~18년이 지났지만 사람을 귀히 여겨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김씨의 대인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음성군 금왕읍에서 선돌메주농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란(52) 대표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사연을 라디오를 통해 듣고 펜팔로 만난 동갑내기 친구와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 한명서씨(52)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몸이 불편했지만 이들의 사랑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김씨는 "이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억척스럽게 삶을 일구어왔다.
결혼 후 생활고가 큰 문제였다. 선생님이었던 시아버지의 얄팍한 월급으로 7명의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언제나 모자랐다. 차례로 아이가 태어나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고 젖이 모자라 갓난아이에게 설탕물을 떠먹여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부터 동네 구판장을 얻어 장사를 시작하게 되고 몸에 밴 부지런함과 절약으로 장사는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김씨는 생활이 안정되자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세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통편이 문제였다. 휠체어가 없어 남편을 업고 다니다 보니 힘도 들었거니와 70년대만 해도 택시 기사들은 장애인들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공업사에 부탁해 남편이 운전할 수 있도록 삼륜차를 개조하고 눈에 잘 띄도록 노란색으로 색칠을 했다. 이 차를 이용해 인근의 명소는 안 가본 곳이 없으며, 특히 충주댐은 너무 자주 가 수자원공사에서 개근상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이 차는 김씨 가족에게 행복과 추억을 가져다준 발이 되어 줬다.
하지만 무면허 상태로 운행을 하다 보니 늘 불안했다. 그 당시 경찰들은 "이게 뭐야 차야? 신기하네"하며 보내주곤 했지만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다닐 수가 없다는 생각에 남편의 운전면허 취득을 돕기로 결심했다.
가족을 세상과 연결해 줄 운전면허증은 이들 부부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과 같은 존재였다. 각고의 노력과 정성으로 남편이 운전면허를 취득하자 운전면허 시험장에선 면허를 따려면 음성 김씨 아줌마처럼 열의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돌기도 했단다.
음식 솜씨가 남달랐던 김씨는 어머니를 닮았는지 음식 솜씨가 뛰어났고 남에게 퍼주기를 좋아했다. 장 담그기는 실력이 뛰어나 한식당을 운영하게 됐고 김장을 하거나 된장을 담그면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해 어려운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남편 한명석씨(52)는 8년 동안 자비를 들여 장애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장애인으로 등록시키고 권익보호에 앞장섰다. 그의 노력 때문인지 820명에 불과했던 음성군 등록된 장애인 수가 54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장애인들에 대한 지원이 인색하던 시절 이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쌀이 떨어졌다, 병원비가 없다'며 한씨 집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이들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고통을 감싸 안았다.
이후 한씨는 음성군장애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됐고, 보건사회부장관상 수상을 비롯해 신한국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음성군장애인복지관 재활상담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전통음식점을 운영하던 김씨는 된장과 청국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3년전부터 음식점을 번고 '선돌메주농원'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인 장 담그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지금 익히고 있는 된장은 혼자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담았어요. 장이 익으면 어르신들을 찾아 전달할 계획이에요." 지천명을 넘긴 김씨가 소풍가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눈물과 기쁨으로 삶을 녹여낸 김씨의 입에선 '항상 긴장, 정말 힘들게, 목숨 걸고' 등의 단어들이 반복돼 등장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얘기를 꺼내자 엄마와 아내의 모습으로 김씨의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손가락 발가락은 제대로 있는지 확인했어요. 가장 큰 걱정이 아이들의 건강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세 아이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고 자라줬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고맙고 신통했던 것이 아빠에게 업어달라거나 밖에 나가서 놀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거였어요."
"제가 등산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한번은 지나는 말로 등산화에 대한 불만을 말하자 기억하고 있었는지 새 등산화를 인터넷으로 구입해 주더라고요. 이번엔 등산화가 무겁다고 하자 운동화도 사주고요."
무뚝뚝한 남편과 32년간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일 없다는 김씨지만 은근한 남편자랑에 어깨를 으쓱해 한다. '표현은 안 하지만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것 같다'고 하자 "자기가 나를 사랑 안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얼마나 자기한테 잘 하는데..."라며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남편 한명석씨는 "이런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집사람이 다른 건 못해도 음식 하나는 잘해요. 음식점을 할 때 남은 음식 싸가는 것이 솔직히 번거롭잖아요. 그런데 먹고 남긴 된장찌개를 싸달라는 사람이 많았어요"라며 아내의 손맛을 인정했다.
김씨를 장류 사업과 관련해 알게 됐다는 음성군농업기술센터 전향화씨(39)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생활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며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는 사람이고 삶을 향한 에너지가 넘쳐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달하는 분"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요즘 자기 시간이 생겨 너무 행복하단다. "정말 하고 싶었던 된장 담그는 일을 하게 됐고요. 남편 출근시키고 세수하고 차 마시는 오전 1시간이 주어져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남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혼자 밥 먹는 것도 너무 좋아요."
아플 시간조차 없어 병원 갈 일이 없었던 김씨는 혈액형이 o형인 줄 알았다가 얼마 전에야 ab형인 걸 확인했다. 혈액형 궁합 중 결혼 가능성이 희박하고, 가정을 꾸린 부부 중 '사이가 좋다'는 응답이 50.3%로 가장 낮은 ab형을 가진 부부다. 하지만 이들 부부 집에선 행복이 곰삭아 가고 있다.
"남편과 결혼한 걸 후회해 본 적이 없고, 지금까지 살아온 게 꿈 같다"라고 말한 김씨는 오늘도 변함없이 된장에 손맛을 녹여내고 있다.
/이화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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