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김천대 교수] 조카딸이 다니던 간호대학을 갑작스럽게 자퇴하고 과테말라로 봉사활동을 하러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나는 요즘같이 취업이 힘든 시절에 간호대학을 자퇴하고 선진국도 아닌 내전이 계속 일어나는 남미의 오지로 떠나는 딸이 걱정도 되고 원망도 된다고 했다. 더욱이 조카딸은 이번에 출국을 하게 되면 2년 간 한국에 돌아오기 힘든 일정이다.

두 모녀는 이별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일단 목적지가 정해져야 하는데 겨울 바다를 보기로 했다. 둘은 대천으로 떠나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돌아 왔다. 겨울 바다를 다녀 온 누나는 필자에게 아름다운 돌을 보여 줬다. 아주 작은 비취같이 생긴 것도 있었고 짙은 갈색을 내는 호박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필자는 이것들을 보석이라고 생각했다. 누나는 이것들은 여름철 사람들이 해수욕을 왔다가 술이나 음료수를 마신 후 바다에 던져 버린 병들이 깨져 유리 파편이 되고 그 파편이 오랜 세월 파도에 휩쓸려 다니면서 보석처럼 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쓸모 없다고 팽개쳐 버린 빈 병의 파편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낼 수 있는 보석이 되다니! 필자는 보석이 된 깨진 유리병 조각을 보고 있다. 아니다. 필자가 보고 있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쓸모 없다고 버린, 깨진 유리병 조각에서 아름다운 보석으로 변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보석이다. 오랜 세월 바닷물과 그 파도와 바람을 맞으며 날카롭고 위험했던 모서리가 차츰차츰 다듬어졌다.

필자는 이것을 '병보석(bottle stone)'이라고 부르겠다. 병보석을 보면서 문득 필자 자신이 생각난다. 필자도 한 때는 무척 까칠했었다. 깨진 병조각처럼 말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필자를 피하기도 했지만 필자도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그러면 현재의 필자는 병보석이 돼 있는지 자문해 본다. 왠지 병보석을 보고 필자를 보니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필자는 아직도 다듬어지지 않은 미완성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상태는 계속될 것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다시 병보석을 보니 이제는 이것이 존경스럽다.

2015년 한 해를 살면서 필자는 얼마나 성숙됐을까?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많은 복잡하고 절망적인 사건을 보면서, 불안한 대한민국 경제 속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연명하면서, 그리고 민주주의와 법치가 지켜지지 않는 혼란스러운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필자는 이러한 파도와 같은 시련과 도전으로 인해 다듬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날카로워진 것 같다. 현재의 우리는 서로를 믿지 못 하고 자신의 날카로움만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두 주 정도가 지나면 성탄절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사랑과 평화를 주기 위해 태어나셨다고 한다. 한 손에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 심판의 망치를 들지 않고 그냥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다.

우리가 믿는 종교를 떠나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을 생각해 보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날카로움만을 보여주지 말고 상대방을 이해하며 존중하는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정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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