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충북대 건축공학과 교수] 충북지역에서 학교건축의 근대화가 시작된 것은 1895년 단행된 23부 실시의 행정구역 개편과 1896년 13도제의 실시에 따라 1908년 충북도청을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선후기(개화기)의 학교건축 시기에는 갑오개혁과 더불어 신교육의 도래로 우리나라에 새로운 학교건축을 요구하게 됐으며 1883년 원산학사와 1895년 한성사범과 소학교가 건립되고 1895년 소학교 규칙대강이 공포되어 서당에서의 교육에서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충북에서의 공립보통학교는 관찰사 소재지인 충주에서 처음 개설되었고(충주소학교 1895년 7월 설립) 충북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된 학교는 1911년 청주공립농업학교(현 청주농고)이다.

(조선후기∼일제강점기)

이후 개신교 선교사들의 내한으로 신교육이 본격화됨에 따라 서구건축양식이 한국 학교건축의 새로운 모델로 등장했다. 1885년 아펜젤러에 의한 배재학당과 1886년의 이화학당 등이 건축되면서 서양식 붉은벽돌조와 석조로 이뤄진 근대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됐다.

초기에는 주요구조체를 목조로 구성하고 외벽만을 벽돌로 외장함으로써 한국의 전통에서 급속한 변화를 주지 않는 한국과 서구의 절충식 형태를 시도한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교정내 기숙사도 한옥이나 초가집을 그대로 사용했다. 1910년경부터 새로 신축되는 학교건축은 서양식의 벽돌구조와 모임경사지붕으로 근대건축양식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됐으며, 이 시기 충북의 대표적 서양식 건축양식은 선교사들이 지은 청주탑동의 양관건축에 잘 나타나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 정책에 의한 제식적, 통제식인 학교건축이 발생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후 제1차 조선교육령(1911-1922)이 발동돼 민족차별정책, 기본교육과 실업교육 중점 등 우민화 교육이 시작됐다. 이 시기 일본식 목조건축을 우리나라에 강요하고 지붕은 양철지붕이나 왜식기와를 얹었으며, 외벽은 얇은 벽체에 얇은 나무판을 붙이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외피를 칠해 우리나라 기후조건에 적합하지도 않은 학교건축에서 일본식 교육이 강요됐다.

3·1운동이후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 시행으로 무단교육정책에서 문화교육정책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시기에도 복도를 직선의 일자식으로 연결해 한 곳에서 모든 교실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으며, 교사에 비해 규모가 큰 운동장을 교사 앞의 높은 단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배치해 구성원들을 통솔하고 위엄과 권위를 부여토록 학교배치계획이 진행됐다.

1938년부터 세계정세의 변화에 초조해진 일본인들은 제3차 조선교육령(1938-1943) 시행을 통해 한국인을 일본화 시키려는 교육정책으로 학교건축 내에 운동장과 연계된 조그만 동산에 황국 숭상의 장소를 만들고 참배를 실시해 학교건축환경의 경직화, 식민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학교건축이 조성되었다. 이후 제4차 조선교육령(1943-1945) 시행으로 전시체제의 교육정책이 진행되었다.

이 시기의 충북에는 1904년 현 청남초와 1909년 현 죽향초 등 대부분의 행정구역에 보통학교가 건립됐으며, 1924년 청주고등보통학교(현 청주고)를 비롯해, 1935년 청주상업학교, 1936년 영동농업전수학교, 1938년 청주제2공립고등학교(현 청주여고) 등 중등학교가 개설돼 현재까지 존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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