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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처녀의 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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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13  20: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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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순 시인·희곡작가] 목구멍에 풀칠하기 조차 힘든 매우 궁핍한 시대에도 방탕한 자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 목구멍에 엄청난 술을 술술 넘기면서 많은 물의를 일으켜 나라가 나서서 진화 시킨 것이 금주령이다.

엄격한 금주령이 내렸던 때 충청도 어느 시골마을에 거칠고 사나운 단속반이 몰래 스며들어 샅샅이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한 처녀가 치마 속에 술병을 감추고 다급하게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맨 처음 목격한 단속반 청년이 동료들의 지원을 받아 함께 의기양양하게 그 집을 덮쳤다.

활짝 열린 대문을 썩 들어섰다. 온가족이 긴장하는데도 그 처녀만은 태연하게 조금 비웃는 듯 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까 치마 속에 감춰온 술병은 어딨어?"

"대문, 부엌, 방문이란 방문은 모조리 다 왈칵 열어 제켰으니 마음껏 뒤져 보세유."

그들은 화가 나는 듯, 대뜸 열어놓은 부엌이고 헛간이고 방안이고 광이고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뒤져댔다.

솥뚜껑을 열어 보고 쌀독 속에 막대기로 들쑤시고 장독대와 다락방과 장롱 속까지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런데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된통 모욕을 당한 듯 다시금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까지 살피고 또 삽을 들고 땅을 파기까지 했다.

그렇게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고 여기저기서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나자 가족들이 집단적으로 거센 항의를 했으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해가 깜빡 지도록 온통 집안을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술병은 커녕 병뚜껑도 발견하지 못한 채 두 손들고 철수했다.

"네 놈이 잘못 짚어서 이 무슨 망신이냐?"

"하늘이 두 쪼각나두 틀림없다니까요."

"두 쪼각은 개뿔…"

"아니면 제 손에 장을 지져요."

"온통 집안을 벌집처럼 쑤셔 놓구서 장을 지진다니 미친놈."

청년은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개서 사과했다.

다음날 처녀 아버지 생신이어서 푸짐한 아침상을 받았다.

처녀가 술병을 들고 아버지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아버지 생신 축하 드려유"하고 함빡 웃으며 말했다.

"허허 고맙구나. 어제는 이 술 때문에 고생이 많았구나."

"그것쯤은 식은 죽 먹긴걸유 깔깔깔" 웃음소리가 집 밖까지 들렸다.

청년은 여러 차례 그 집을 찾아가, 다른 수사를 위한 것이니, 그 술병을 감춘 비밀을 알려 달라고 사정했으나 처녀는 입일 떼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 찾아가는 동안에 처녀에게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사랑에 빠지는데 까지 가고 마침내 결혼 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았다.

그때서야 비로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문고리에 술병을 걸어놓고 방문을 활짝 열어두니 문짝이 등 뒤에 그 술병을 완벽하게 감추어 주었구먼유."

그 말을 듣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시부모님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하다고 감탄했고, 남편은 새색시 아이큐가 아주 높고 입이 태산 보다 무겁다고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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