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대부분 이름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건축물도 건축물대장에 올림으로써 이름을 가진다. 나무와 꽃, 동물도 모양새와 형태, 서식환경, 생태적인 습성, 사람과의 관계, 자라는 곳, 신화나 전설 등으로 이름이 유래 됐고 사람이 사는 거리와 지역도 이름이 있다.
 
그런데 도중에 이름을 바꾸게 되면 혼란이 찾아온다. 개인이 사는 집도 지번을 기준으로 하는 주소 명을 쓰다가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변경한 도로명주소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적응이 안 되고 있으며 서울 관악구는 2008년에 동명 변경 및 통폐합을 한 이후 아직도 헷갈려 옛 봉천동을 찾아갔다가 난감했던 적도 있다.
 
청주도 지난해 7월 1일 청원군과 통합 시로 태어나면서 4개의 자치구로 통합시를 나눴는데 지금도 우편물이나 택배 물품은 구 주소와 신 주소를 동시에 사용해야만 원활하게 도착하는 불편함이 있다. 도중에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혼돈의 연속이므로 신중해야만 한다. 더구나 꼭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면 새로 바꾸는 이름은 어감도 좋고 듣기에도, 부르기에도 좋아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22일에 확장 개통한 죽음의 도로라고 알려졌던 88고속도로의 개명으로 논란이 많다. 이 도로는 전라도의 광주와 경상도의 대구를 잇는 도로로서 도로의 기능과 안전성에 끊임없이 논란이 일었던 도로다. 31년 만에 도로를 정비하고 이제는 '광주대구고속도로' 와 약칭으로 '광대고속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양 도시는 이 도로의 확장개통으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관광뿐 아니라 각종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와 영·호남의 교류도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는 오래된 지역감정을 타파하고 창조경제를 하자는 정부의 뜻에도 부응하는 것인데 '국토부'는 대구를 뜻하는 달구벌의 '달' 자와 광주 빛고을의 '빛' 자를 합친 '달빛고속도로'라는 이름을 감성적이라는 이유와 고속도로명의 표기원칙의 어긋남을 들어 지역민의 뜻을 끝내 무시하고 말았다. 
 
88고속도로는 특정일을 기념해 명명했던 이름이다. 이미 고속도로명의 표기 원칙에 위배된 선례가 있다. 실정이 이럼에도 굳이 표기 원칙을 내세우며 지역민의 뜻을 외면하고 전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는 점은 교수신문이 올해 채택한 사자성어 혼용 무도(昏庸無道)에 딱 맞는 사례이다.
 
일본의 '에모토 마사루' 박사는 물과 파동에 대해 연구해 온 사람이다. 그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저서를 통해 말과 글씨, 음악에 따라 물의 결정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연구해 사진으로 담았다. 좋은 글을 보고 좋은 말을 하면 사람의 기분이 좋아지고 나쁜 말을 듣거나 하고 나면 불쾌한 것은 결국 인체의 70%가 물로 이뤄졌고 그에 따라 파동을 일으켜 기분을 좌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입고, 좋은 말을 마음껏 사용하고 싶다는데 국민의 뜻을 정부가 막으니 2015년은 혼용 무도의 해라는 오명을 쓰고도 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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