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용담명암산성동장

▲ 김복회 청주시 용담명암산성동장.

[김복회 청주시 용담명암산성동장] 사무관 동기 모임을 경북 칠곡군에서 했다.

동기생 중 하나가 '칠곡호국평화기념관' 관리소장으로 있기 때문이다.

5급 승진리더과정 교육을 받을 때가 가장 좋은 때라고 선배들이 말하더니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게 보냈다.

하지만 칠곡군에서 온 그 동기는 유독 바쁘게 보냈다.

기념관 개관 준비 등으로 교육 중에도 주말마다 기념관으로 출근해 조례를 제정하는 등 매우 바쁘게 보냈었다. 

그리하여 개관한 기념관을 관람하기 위해 동기들이 모였다.

호국기념관이라는 것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학예사의 세세한 설명에 가슴이 뭉클하고 먹먹했다.

오늘날 이 나라를 존재 할 수 있게 한 '칠곡의 다부동전투'때문이다.

6·25전쟁 중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55일 동안이나 산천을 피로 물들인 치열한 전투였다.

지난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벌어졌던 전투과정을 들으면서 가슴에 전율을 느꼈다.

가장 치열했던 369고지는 12일 동안 15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다니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여러 가지 체험관 중에 4D영상관이 가장 눈에 띄었다.

탱크를 타고 그때의 고지 상황을 가상 체험하는 곳으로 산을 오르는 탱크가 급경사를 만나 심하게 흔들리기도 했다.

폭탄이 터지고, 총에 맞아 죽는 군인들의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 중, 교복을 입은 채 학도병으로 끌려온 중학생들의 처절한 모습은 눈을 뜨고 차마 보지 못 할 일이었다.

곁에서 친구들이 피 흘리며 쓰러져 갈 때 어린 마음에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학도병이 엄마에게 쓴 편지엔 제 손으로 적군인 북한 군인을 죽였다는 말과, 죽고 죽여야 하는 두려움을 적기도 하고, 꼭 살아 돌아가 상추쌈과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옹달샘 물을 벌컥벌컥 한없이 들이켜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군번도, 이름도 없이 들꽃으로 스러지고 말았다.

고지로 전쟁물품과 식량을 날라다 주는 민간인들도 보였다.

그 높고 험한 고지에 맨몸으로 물자를 지게에 지고 나르다가 이름 없이 죽어간 민간인들도 많았으리라.

4D관을 나오며 내내 마음이 먹먹했지만 55일 동안의 전투과정도 꼼꼼히 돌아봤다.

총을 쏠 수 있는 체험도, 군수물품을 나르던 지게를 져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필자가 어릴 때 가장 흔한 운반 기구는 지게였다. 필자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지게로 나르셨다.

소꼴도, 볏단도, 겨울엔 땔감을 가득 져 나르기도 하셨다.

나무를 가득 지고 추운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마당을 들어서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는 분이 지게를 지실 때면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작대기를 땅에 집고 있는 힘을 다해 일어서시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기념관에 있는 저 지게가 나라를 구한 지게라면, 우리 아버지의 지게는 우리 가족을 구하고 일으켜 세운 지게이리라.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이 국민들로 하여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지게 하는 곳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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