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한솔 홍익불교대 철학교수] 현대는 지성(知性)이 판을 치는 시대다. 그러나 한편 오늘날처럼 행동력이 요구되는 시대는 없다. 아니 행동력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실행력'이라 하는 편이 더욱 적절할지 모른다. 행동력의 개념에는 무 목적적(無目的的)인 요소가 내포돼 있는 것 같으며 목표, 계획에 의거하는 목적의식적(目的意識的)인 실행력의 개념과는 약간 뉘앙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적(知的)사회에 있어서의 행동력, 실행력의 요청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에서도 '실행력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 직원 채용에 있어서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따라서 조직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실행력이 성공의 요건임은 이제 보편적인 원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실행력을 몸에 베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매일 오후의 퇴근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일제히 직장에서 튀어 나오는 모습을 보라. 마치 태풍의 접근이나 화성인(火星人)의 침략을 받고 당황해 도망치듯 소란을 피운다. 일이 그렇게도 고통스러웠던 것인가. 무서운 뱀이 몸을 칭칭 감아 조여들어오는 것 만큼이나 징그러웠던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일은 사람들에게 있어 벨이 달린 시계와 같은 것이며, 사람들은 일이 끝나는 벨이 울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계 감시원으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생활 태도는 일에서 금전 이상의 것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자기의 성장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의 일을 발견하는 사람은 은혜를 입고 있다. 그 이상의 은혜를 기대하지 말라.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노동이라 하더라도 그 일에 열중하면 그의 온 정신은 참다운 조화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토마스 칼라일의 말이다.

일 속에서 마음의 조화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단 일거리를 잃거나 일이 싫어지면 곧 마음이 위축돼 버린다. 생기 발랄 했던 눈빛은 사라지고 용모조차 변하고 만다. 그러나 자기에게 적합지 않은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자기의 일에서 기쁨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에 노예처럼 근무한다. 그저 돈 때문에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일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기쁨을 알 수가 없다. 만일 당신이 이런 상태에 있다면 곧 바로 어떠한 조처를 강구하라.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없을 때는 사는 보람 또한 느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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