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설 명절이 지난 이맘때 쯤이면 사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심심치 않게 보던 이사 모습이 요즘은 도통 보이질 않았다.

새 학기를 맞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학생을 위해, 혹은 직장의 전근 등으로 새롭게 살 집을 찾아 나서는 것이 봄철에 치르는 일 중 으뜸인데 이사 모습 보기가 어려우니 대충 귓등으로 들은 부동산 시장의 암울한 소식이 맞는가 보다.

둘째 아들이 진학할 고등학교와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급하게 선택한 동네에서 살기 시작한 것이 십여 년째였다.

집을 매입할 때 가장 으뜸 기준인 재테크에 대한 가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내 아이가 편리하게 학교에 다니면 그 뿐이었다.

이제 아들은 이곳을 떠나 타지에 산다. 그러니 딱히 이곳에 살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좀 더 나은 삶의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 나의 권리를 내버려두지 않는 현명함일 것이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결국 이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매서운 겨울 추위가 피부로 느껴질 무렵 미국 금리 인상과 정부의 대출 규제 소식이 들려왔고 그 소식은 부동산 구입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살아오면서 두 번의 집을 살 때 기준은 가족 누구에게나 편리해야 하며 일 마치고 귀가했을 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기준은 없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우리나라의 대출 정책이 왜 부동산 시장을 얼어붙게 하는지 그 상관 관계 조차 모르고 살았으니 필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뒤처진 부류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왜 사람들이 살지도 않을 집을 청약하는지, 아파트 분양권이 금전적 수익을 주는 매체라는 것을 지금껏 살도록 몰랐다고 말한다면 부끄러움의 극치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이 커서 좋아하는 것 중에 집과 자동차를 꼽는다. 지인이 좀 더 큰 집이나 차를 샀다는 소식이라도 들으면 한없이 부러운 눈길을 보내며 자신도 그와 같길 꿈꾼다.

인간의 내밀한 가운데 질투와 시기의 마음이 존재하다 보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거나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도 있나 보다.

그동안 어설피 알아본 부동산 시장에 대한 지식을 알고 나서 이사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강해졌다. 행여 선택을 잘못하면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우리나라 경제는 항상 흐린 날일 것이라는 생각만 더욱 굳어졌다. 좋은 집이란,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조이스 메이나드'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내가 나를 위안했다.

들썩거리던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자꾸만 집의 진실한 의미를 되새기며 가치를 부여해본다. 살아가는 일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것이 더 이익인지 늘 결정해야만 한다. 눈발이 흩날리는 네거리에 서서 찬바람을 맞으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총선 주자들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도 이사 만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봄철 일거리다.

이익이 되는 선택이 어렵다면 불이익을 피할 선택 쪽으로 마음을 써보면 덜 힘이 들려나. 이것도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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