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동규] 얼마 전 온 나라가 국회의원 선거로 시끌벅적했다. 선거가 끝난 후에는 그 결과가 언론에서 말하던 그것과 상이하게 달라 정치권도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사실 이러한 일들이 매 선거철 마다 반복되는데 그 모양과 형세는 늘 다른 듯 보이지만 그 핵심은 항상 똑같다. 바로 '경제'이다.

 그들이 말하는 '경제'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벌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람일 것이다. 사실 노동 시간이 좀 늘어나더라도 더 많이만 벌 수 있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란 단순히 내 호주머니가 얼마나 더 무거워질 수 있는가를 그 핵심으로 한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내 호주머니에 관심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남의 호주머니 사정에는 점점 관심이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내 수입이 늘고 내 생활이 더 윤택해지면 온 나라 국민들이 다 나처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나의 부요함에 취해 남들의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성경은 부자에 대해 참으로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한없이 유한 경우가 많다. 예수 말씀의 핵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예화이다. 나사로라는 거지는 한 부자의 집 앞에서 버려지는 음식으로라도 배를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부자도 비슷한 시기에 죽어 이 둘은 함께 하늘나라에 간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는 천사의 인도로 천국에 가게 되고 부자는 지옥에 들어가 고통을 당한다. 아브라함은 그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너는(부자)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 16:25)

  성경은 이 부자에 대해 그가 부정을 행했다거나 혹은 다른 이의 것을 빼앗아 부자가 된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부자이다. 그리고 그 부요함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지 않았다.

  부요함이란 "그것을 어떻게 이루는가?"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도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부를 얻는 것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경제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부정적 의미의 '부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참된 부는 그것을 모으는 과정과 함께 그 부를 이룬 이후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결정된다. 왜냐하면 부란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참된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요 과정이기 때문이다. 물질은 내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내 목표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 호주머니를 어떻게 더 쉽게 더 많이 채울까 하는 생각이 아니라 내 호주머니 속에 있는 이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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