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한 화장품 회사 회장으로부터 100억 원대의 수임료를 받고 구명 로비를 펼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와 액수미상의 돈을 받은 전직 검사장 출신 변호사의 비리사건은 우리나라에 법의 정의가 정말 존재하기는 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떡값검사, 스폰서검사, 벤츠여검사에 이어 또 다시 드러난 이번 법조비리 사건은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타락이 얼마나 사회에 큰 해를 끼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신뢰도가 땅에 떨어진지 오래인데, 사회정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법조인들마저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추락했다. 인·허가와 규제의 칼을 들고 있는 행정 공무원의 부패도 이미 도를 넘어섰으니, 국민들은 이제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10년 전에 재벌의 편법 상속과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대기업 법무팀장으로서 검찰·법원 로비 현장 체험을 기록으로 남긴 바 있다. 돈으로 법과 정의를 무릎 꿇리는 재벌의 행태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과연 사실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될 정도로 이 사회가 돈에 휘둘리는 물신주의에 푹 빠져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돈을 펑펑 뿌리면서도 늘 사육당하는 기분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들'은 돈을 쓰지 않으면 일을 열심히 안 한다고 질책했고, 그 돈으로 사법부 길들이기를 요구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그는 "내 청춘을 고스란히 묻었던 검찰이 그들이 뿌린 돈으로 썩어가는 것을 보는 일이 괴로웠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화장품 기업 회장 구명비리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과 그 관계를 보면 불륜과 불법이 난무하는 막장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돈과 여자, 브로커, 음모와 배신, 폭력과 탐욕 등 범죄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요소는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영화의 소재가 되기에도 충분해 보인다.

 국민들은 언제까지 이런 저질드라마 보기를 강요받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상황에서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대통령의 4대 개혁이 성공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전관예우'라고 포장된 범죄 행위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법은 가진 자들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100억 원대의 수임료, 91억 원의 연소득은 전관예우 덕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건이 게이트 수준으로 비화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듯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특검까지도 가능하다. 전관예우는 특정 집단의 이익 보장을 위한 항구적 장치이자 조직범죄나 다름없다. 집단이기주의가 죄의식을 마비시켰고 그래서 아무리 지적해도 불식되지 않고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 정의의 보루라는 명예와 자부심으로 살겠다는 법조인의 각오가 재물 욕심으로 훼손되는 세태가 안타깝다. 재직 중에 받는 급여와 은퇴 후 받는 공무원 연금이면 우리 사회의 평균을 훨씬 넘는 수준으로 나름 품위 있게 노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이 재벌 계급으로 가는 티켓을 따낸 것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이쯤에서 법조인들은 자족하고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차분히 자신들을 돌아봐야 한다. 물결이 잔잔해져야 호수에 비친 산봉우리를 볼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바라보며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사법 정의를 회복되지 않으면 이 나라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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