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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장모님 전서(傳書)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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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17  16:4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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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아범아 지금 은행 왔는데 환전은 어떻게 하면 되겠냐?" 전화기 저쪽에서 짱짱한 목소리가 울렸다. 장인어른이시다. "아버님 은행원한테 맡기면 알아서 해줄 거니까 걱정 마세요"라고 대답하면서 문득 생각해보니 나와 장인어른의 인연도 어느새 28년째를 맞아하고 있다.

 1988년 11월 하순 어느 날, 일찍 찾아온 추위에 떨며 낯선 시골 버스터미널에 내려선 나는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한 한국인 아가씨의 뒤를 따라 그녀의 부모님이 사시는 집으로 향했다. "아버지 생신날 찾아뵙고 인사드려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을 믿고 앞뒤 안 보고 나선 것이었다.

 잔뜩 긴장한 채 케이크 하나만 달랑 손에 들고 찾아온 외국인 청년을 그녀의 부모님은 역시 다소 긴장하면서, 그래도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이미 여러 번의 가족회의와 부모의 간절한 만류에도 끝끝내 결혼하겠다는 딸의 고집을 꺾기는 틀렸다고 판단하셨는지 얻어맞을 각오까지 하고 내려간 내가 오히려 맥이 빠질 정도로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받아주셨다. 당시에는 나의 한국어가 서툴러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내 어깨를 얼싸안고 "내가 앞으로 너를 지켜주마"라 하신 한 마디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도 어려운 게 결혼인데 하물며 언어도 문화도 다르고 가뜩이나 한국과 일본처럼 서로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두 나라를 조국으로 둔 우리에겐 하루하루가 넘기 쉽지 않은 시련의 연속이었으나 그로부터 지금까지 장인 장모님은 언제나 한결 같이 곁에서 우리 부부를 응원하고 지켜주셨다. 유학 중이라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도 경제능력이 없던 나에게 처가살이를 하게 해주셨고, 첫째아이가 태어난 후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집사람 대신 아이를 키워주시기도 하셨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아이들이 크면서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자식 손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낼 때면 꼭 우리 아이들에게도 다른 친손자들과 똑같이 절을 올릴 기회를 주시는 것이었다. 적통을 생명시하는 유교의 가르침에 비춰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장인 장모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일본 핏줄의 외손자들이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효심이 남다른 장인어른은 속으로 조상님께 용서를 구하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약 38,000명. 그들이 운영하는 생활정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안타깝게도 나처럼 한국인과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시댁 또는 처가의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알고 보면 그 원인의 대부분이 문화나 사고방식의 사소한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데 서로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양보를 안 하니까 자꾸 문제가 커지는 것 같다. 일본인도 한국인도 같은 인간이다.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은 반드시 상대방에게 통하는 법, 이것이 내가 장인 장모님으로부터 배운 인생철학이다.

 내일이면 장인 장모님이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떠나신다. 우리 부부가 난생 처음 보내드리는 효도여행이다. 평소에 그렇게도 가고 싶어 하셨던 홋카이도에 이제야 보내드릴 수 있게 돼서 정말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늦은 것 같아 송구스럽기도 하다. 앞으로 더 효도할 테니 건강히 오래오래 사세요, 장인 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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