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요행수’라는 말이 있다. 사전을 보니 “뜻밖에 얻는 좋은 운수”라는 뜻이다. 뜻밖에 얻는다는 말은 어쩌다 일어난다는 말이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 요행수가 생각하지 않는 데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무슨 말인가 하면 생각하지 않았는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 생각만 하면서 사는 것 같다는 말이다.

가끔 터지는 사건과 사고를 보면 이 요행수를 바라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주위를 보면 절묘한 어떤 일이 일어나서 자기의 상황과 처지를 바꾸기 원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물론 점점 더 살기 각박해지는 이 시대의 상황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행수는 요행수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기에 기대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우리 선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참으로 인생의 지혜가 담긴 말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돕는 것이 운수이고 요행이라면 이 도움이 아무에게도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돕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돕는다는 것은 삶의 자세요 모습이다. 스스로를 돕고 열심히 사는 사람은 사실 운수와 요행을 그리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운수와 요행을 바라지 않고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이것이 주어진다고 하니 얼마나 역설적인가!

세계적인 백만장자인 마크 피셔가 쓴 ‘골퍼와 백만장자’라는 책이 있다. 그 책 속에서 백만장자는 자기와 내기를 하는 골퍼에게 이렇게 말한다. “평상시 훌륭한 샷을 할 수 있는 골퍼는 수없이 많아. 그러나 시합이 어려워지고 심리적 압박감이 엄청난 상황에서는 오직 훈련된 사람만이 실수를 피할 수 있지. 위대한 골퍼들은 게임의 90퍼센트가 심리적이라는 것을 알지. 인생도 마찬가지야. 둘 다 마음먹기 달린 거지 어떤 위대한 골퍼가 한 말이 있네. ‘나는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는 더욱 더 운이 좋아져!’”

이 마지막 말이 뇌리에 맴돈다. ‘연습을 많이 할수록 운이 더 좋아져!’ 사실 살면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포기하고 그냥 되는 대로 일을 맡기거나 놓아버리기도 한다. 운이 없다고 말하고 주저 않아 버린다. 그런데 운은 주저 않아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돕는 자, 연습을 많이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음을 말한다. 세상을 지으신 분이 도우신다면 이보다 더 큰 운이 없을 것이다. 아무 것도 안해도 충분히 좋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으니 우리에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의 잠언서를 보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말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삭이라는 인물도 흉년 가운데 백배나 결실할 정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지만 그냥 손 놓고 있지 않았다. 우물을 얻기 위하여 누구보다 열심히 땅을 팠다. 그리고 그 척박한 땅에서 우물을 일곱 개나 얻었다.

티모시 페리스는 말한다. “모든 운이 따라주며, 인생의 신호등이 동시에 파란불이 되는 때란 없다. 만약 그 일이 당신에게 중요하고, ‘결국’ 그 일을 할 것이라면 그냥 하라” 인생의 신호등이 동시에 파란불이 되는 요행수를 바라며 그냥 있을 것인가? 아니면 때로 빨간 불이라 섰다 가더라도 일단 출발할 것인가? 하나 뿐인 우리의 삶을 지나가는 운에 맡기지 말고 그 운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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