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우리의 삶속에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수많은 일들이 만연해 있다. 말로는 도저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타인의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는 사건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뻔뻔스럽고 추악하게 저지르는 성폭력 범죄, 그리고 타인의 인격이나 의사 따위는 무시한 채 저 잘났다고 횡포를 부리는 '갑질 논란' 등 요즈음 아침에 눈을 뜨기만 하면 무의식적으로 접하는 일들이라서 내 자신은 물론 자칫 주변의 사람들 특히 어린 세대들이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덤덤하게 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우리를 슬프게하는 많은 일들 중에서 갑질 논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계속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갑질논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갑'으로만 살든지 또한 '을'로만 살든지 어떤 선택의 권한이 있는가에 대한 자문을 해본다. 갑질 논란은 요즈음 화두로 떠오르는 무거운 논제이자 중요한 사회문제이다. '본래 우리의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우리들 대부분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으로서 노동을 해야하고 노동을 하기위해서는 어떤 집단속의 일원이 됨은 물론 노동의 대가를 받음으로써 자연스럽게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 예를 들자면 부장검사의 갑질 논란으로 삶을 포기한 검사나 매니저의 횡포로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여배우의 자살 등, 이들이 심각하게 겪었을 소외와 절망을 극복하지 못한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들이 이겨내지 못한, 그리고 남의 일 같지 않은 고통의 무게에 대하여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갑이 될 수밖에 없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을일 것 같다. 하지만 을로 태어났다고해서 영원한 을은 아니다. 노력의 여하에 따라서 갑과 을의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갑질 논란은 을이었던 사람이 갑이 되었을 때 또 다른 을에게 자기가 당했거나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행함으로써 을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끔 만든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처해 있는 상황과 고통에 대한 내성, 그리고 타고난 천성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짐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미 위로하기도 두렵다. 다만 그들의 마지막 의지로 실행한 선택이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기울어진 안타까운 사실이라는 것이 슬픈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절대 넘을 수 없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따라서 권력을 가졌거나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이 세상은 여전히 합리성에 기대어 굴러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우리의 옛 속담을 뇌 새겨 본다면 갑질 논란의 피해자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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