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요즘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보고 있는 주제 중 하나는 미자나빔mise en abyme이다. 미자나빔은 문학이나 회화 등에서 예전부터 사용되어 온 방법인데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에 의해 처음으로 개념화되었다. 지드는 자신의 작품 <위폐범들Les faux monnayeurs>에 대한 작품 일기에서 처음 이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지드가 이 개념에 사용한 아빔abyme은 문장紋章이나 가문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귀족이나 왕실의 가문을 상징하는 방패 모양의 문장의 중심부를 지칭한다. 지드는 아빔을 ‘~에 밀어넣기’라는 의미의 ‘미장(mise en)’에 결합하여 방패 모양 문장의 심장 부위에 또 다른 작은 방패 모양을 삽입해 넣는 방식을 명명하였으며, 문학과 예술에 나타나는 유사한 기법을 이 개념에 적용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다. 즉 미자나빔은 그림 속에 그림이나 거울과 같은 작은 액자가 들어 있다거나 소설의 이야기 속에서 또 누가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작품 속에 작은 작품이 삽입되어 있는 경우들을 의미한다. 지드는 자신의 작품 <위폐범들> 속에 소설가 에두아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이 소설가가 소설 내용을 구상하고 소설의 주제를 잡아가는 과정을 담아내는 미자나빔기법을 사용하였다.

이 용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액자기법’이나 ‘상감 혹은 격자식 서술’이라고 하기도 하고 ‘심연으로 밀어 넣기’, ‘중심문(中心紋) 새겨 넣기’ 등으로 옮기기는 하지만 이 개념이 지닌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기는 쉽지 않다. 사실 지드가 이 개념에서 사용한 단어 아빔abyme은 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은 용어로 발음은 동일하지만 철자가 다른 단어 심연abî̂me을 상기시키면서도 심연이라는 단어가 지닌 일반적인 의미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풍부한 뉘앙스와 고정된 의미를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가 이 용어의 의미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대신 불어 원어의 발음을 그대로 옮기는 것도 지드 자신이 일부러 사전에 나와 있는 단어와 철자가 다른 문장학 용어를 사용하여 사전적 의미에 갇히지 않는 열린 의미의 개념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용어를 발음 나는 대로 우리말로 옮기는 경우 미장아빔과 미자나빔 두 가지가 가능하며 실제로 자료들에서 두 가지 표기 방식이 모두 사용되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에 밀어넣기’라는 의미의 ‘미장mise en’에서 en은 ‘앙’이라는 비(鼻)모음으로 발음된다. 그런데 이 단어 뒤에 모음이 올 경우 비모음은 사라지고 en의 n은 마치 뒷 단어 모음에 결합된 첫 자음처럼 연독된다. 따라서 이 용어가 실제로는 미자나빔으로 읽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용어에 결합된 단어를 분리해서 각 단어의 발음을 살려서 표기하면 미장아빔이 되고 실제 전체 용어가 발음 나는 대로 표기하면 미자나빔이 되는 것이다. 이 용어에 대한 표기가 통일되어 있지 않아 때로는 표기방법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때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두 가지 표기가 모두 가능하다. 구체적인 작품 속에서 미자나빔의 양상들은 어떻게 나타나며 이러한 방식이 문학과 예술 작품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차차 사색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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