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정현숙 열화당책박물관 학예연구실장] 한 달 이상 지속된 폭염에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이제 한반도는 더 이상 온대가 아닌 아열대 지역인 듯하다. 이런 날씨보다 더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온갖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들이다. 뉴스 접하기가 두려울 정도다. 이런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주는 것이 올림픽에서의 태극 전사들의 승전보이다.

 2016년 8월5일부터 21일까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제31회 리우올림픽은 남아메리카에서 개최된 첫 올림픽이다. 올림픽의 기본 정신은 스포츠를 통해 경쟁이 아닌 우애를 다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준으로 국가별 등수를 매긴다. 금메달 10개에 10위가 목표였던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9개로 8위를 차지했다. 금메달 수로 셈하는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성적이 부진한 편이라 한다. 두 자릿수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이후 처음이란다. 그래서 대미를 장식한 골프여제 박인비의 값진 금메달에 더욱 환호했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금메달 수를 기준으로 하는 올림픽 순위 매김의 타당성을 방송했다. 그것에 의하면 순위의 기준이 전체 메달 수, 금메달 수 또는 점수로 다양했다. 금메달 수가 순위의 기준이라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리우올림픽에서 땀 흘린 몇몇 선수들은 경기에서 부진했다는 이유로 감당하기 어려운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대회 초반 치러진 수영 종목에서 박태환 선수의 예선 탈락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그간의 우여곡절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동계 올림픽에 김연아가 있다면 하계 올림픽에 박태환이 있다고 할 정도로 그는 우리의 희망이었고 긍지였다. 그 결과는 무엇보다 본인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힘겹게 감내해야 할 사람도 바로 한때의 스포츠 영웅인 그 자신이다.

 그러나 성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그가 그리고 메달권에 들지 못한 각 선수가 흘린 땀방울의 가치마저 하찮은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겪은 심적 부담감과 그것을 이겨낸 각고의 노력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게는 힘찬 축하의 박수를, 그렇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더 우렁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그들은 오늘 잠시 부진했을 뿐이다. 내일 다시 화려하게 부활할지도 모른다. 설사 부활하지 않은들 어떠한가. 그들은 매순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의미가 있다.

 국민 대다수가 생각하는 지금의 한국은 정의롭게 살면 바보가 되는 나라,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나라, 절대 다수의 을이 소수의 갑에 의해 사육당하는 나라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갑이 되려고 한다. 이것은 과정은 보지 않고 결과만 중시하는 한국적 풍토 때문이다. 매순간 땀 흘린 과정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될 때 우리는 후손들에게 떠나고 싶은 나라가 아닌 머무르고 싶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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