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은 이제 수험생이 아닌데도, 방안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읽다가 던져 놓은 책들이며 이리저리 벗어 놓은 옷가지들로…. 그런데도 녀석은 정리할 기미가 없다.

시험만 끝나면 무엇이든 잘하겠다고 큰소리쳤던 녀석이기에, 몇 번 잔소리를 하다가 난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차라리 안보면 마음이 편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아들이 외출한 사이에 책을 가지러 들어갔다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지나칠 정도로 어질러 있는 책과 옷가지들이 내 발목을 잡고 만 것이다.

"시험 보기 전에는 공부 때문에 그런다더니 지금은 뭐야?"

나도 모르게 한숨처럼 중얼대며 아들 방을 두리번대는데, 꽤 신경 써서 옷걸이에 걸어놓은 옷 한 벌이 눈에 띄었다.

회색 웃옷에 검정색 바지, 그리고 회색 줄무늬 와이셔츠!

삼년간 아들과 함께 했던 교복이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면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으니, 하루 중 3분의 2를 넘게 입은 옷이다.

가까이 다가가 이리저리 뒤적이니 소매부리며 바지 밑단, 그리고 바지 엉덩이 부분이 참으로 날긋날긋하다. 양손으로 세게 잡아당기면 힘없이 찢어질 것만 같다.

참 마디게 크는 아이라서 3년 동안을 큰 변동 없이 입었으니 더욱 그런 것 같다.

고교생 둔 엄마의 희로애락

문득 아들이 걸어온 3년이란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항상 잠이 부족했던 아들은 아침 0시 수업에 참석하기 위하여 늘 종종걸음을 쳐야했다. 난 그런 아이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싶어 조바심 내며 따라다녔고…. 그리고 두 달에 한 번씩 보는 모의고사는 한참 힘이 넘쳐나는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의 사내아이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기에 딱 적당했다.

그런 아들이 딱하게 보이면서도 난 시험 결과에 따라 기쁨과 아쉬움을 바꿔가며 살아가는 이기적인 엄마이기도 했다.

그런 중에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에 아들은 친구들보다 한 시간 더 오래 야간자습을 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늦은 밤에 학교에서 혼자 오는 길이 늘 불안했는데, 어느 날 아들은 코피를 흘리며 집에 돌아왔다. 학교에서 오다가 공원 앞에서 불량배를 만나 돈을 빼앗기고 구타를 당한 것이다. 아들은 그 때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얼굴을 닦았지만, 난 참 미안했다. 세상의 불의에서 지켜주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그래서 고등학생을 둔 엄마는 죄인 아닌 죄인이라고 했나보다.

입시가 전쟁으로 비유되는 현실에서 전사(戰士)로 나서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는 기꺼이 몸을 던져 방패가 되고 손발이 되어 주어야 되니까. 그래도 '좋은 대학 합격'이란 가슴 벅찬 결과만 있다면 엄마의 고달픔은 눈 녹듯 사라지겠지만, 그 반대가 될 경우 누구에게 하소연도 하지 못하는 시린 가슴을 혼자서 쓰다듬어야만 되는 것이다.

세상 향해 날개 편 아들

나에게도 지난 3년은 참 긴 시간이었다.

힘들어하는 아들에게 난 언제나 부족한 엄마였지만, 어쨌든 아들은 이제 애벌레가 껍질을 벗고 날아오르듯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교복이 아들의 껍질인 것처럼 보인다.

아들은 이제 날개를 달았으니 새로운 세상 속으로 자유롭게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난 아들이 벗어놓고 간 껍질을 소중히 보관하며, 아들이 만날 새로운 세상의 고빗길에서 부디 날개를 다치지 않기를 그저 두 손 모아 기도할 뿐이다.

▲ 김송순 여백문학회원·동화작가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