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의영 전 충청대 교수

[곽의영 전 충청대 교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삶의 철학(哲學)이 있어야 하듯이, 죽음에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죽음의 의미를 통해,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삶 그 자체만으로는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 것인지, 불가해(不可解)한 것으로, 죽음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릇 죽음의 문제는 삶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기에, 고대(古代)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철학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어왔다. 

사실 사람은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할 수가 없다. 죽음을 경험한 자는 바로 생명을 다한 그 사람뿐이다. 그러기에 죽음의 정의를 내리기란 매우 지난(至難)한 것이다. 어느 날 공자(孔子)의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 왈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 했다.

그러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죽음이란 ‘한 생명체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사라져 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므로 죽음은 인간의 경험과 지각(知覺)의 영역을 넘어서는 차원의 세계에 속한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유한(有限)한 존재이다. 고로 자신의 생애(生涯)를 잘 다스려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삶의 철학’으로, 진정한 의미의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은 사유(思惟)와 통찰(通察)이 있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은 성찰(省察)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우리가 성찰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으로. 이에 의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터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죽음의 철학’을 통해, 과연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헤아려 보아야 한다. 살면서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하루하루가 그 만큼 소중하고 충실해질 수 있는 것이다. 실존철학자 하이데커는 죽음은 ‘도달할 종착역이 아니라 실존(實存)으로서의 자아(自我)를 자각(自覺)하는 적극적 계기의 의미를 갖는다’ 했다. 이로보아 죽음의 철학을 논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잘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 삶의 유한성(有限性)을 깨달아, 비로소 시간을 지각(知覺)함으로써, 비로소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채워갈 수가 있는 것이다.
유한한 인생, 결코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죽음의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바르게 정립하여, 주도적으로 충실하게 사는 것이 본래적(本來的)삶이다.

자신 스스로 살지 않고 누군가를 따라서 하루하루 생활함은 본래적(本來的) 삶이 아니다. 주도적·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 모쪼록 나와 세상을 조용히 바라보고, 자신의 참다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자. 그리하면, 참다운 인생 그리고 행복한 삶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오늘을 간절하고 진지하게 살아가자. 결국 ‘죽음의 철학은 곧 바람직한 삶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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