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터미널, 손을 흔들면서 배웅하고 마중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내 시선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큰 키에 까무잡잡한 얼굴, 계절에 맞지 않는 구겨진 낡은 양복을 입고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는 서성거린다. 매표소 앞에서 메모지 한 장을 들고 머뭇거리며 어디론가 찾아 떠나려는 눈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려고 하는 표정이지만 낮선 이방인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만 보고 있던 내가 선뜻 다가가 알고 있는 영어 단어들을 총동원한다. '하이' '화이' '어드레스' 메모지에 적힌 지방의 차표 구입을 도와주는데 낡은 지갑 갈피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가족사진을 보았다.

나의 친절에 감사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지만 눈빛과 표정은 불안해 보였다. 사랑하는 가족사진을 가슴에 품고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국나라에 와서 이제 일터를 향해 가려는 듯 보였다. 그는 순대 속을 꾸겨 넣듯이 트렁크를 다시 정리하고는 지방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구겨진 양복만큼 지친 몸과 마음을 짐짝처럼 버스에 깊숙이 파묻고 떠났다. 어느 공장 기숙사에 여장을 풀고 밤에는 새우잠을 자면서도 낮에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을 하며 몸을 도끼 삼아 일을 할 것이다. 그것이 가족의 행복과 꿈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몸이 으서져라 일을 할 어떤 이방인의 뒷모습이 한동안 마음에 남아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었던 그의 가족사진이 잔영처럼 남아서 지워지질 않았다.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외국인 근로자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대기업을 선호하고 연봉을 먼저 계산하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외국어 스펙을 쌓는 노력만큼 노동의 가치를 경험하면서 기회를 창출해낼 수 있는 용기는 없는 걸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어떤 성공한 이는 과거 어려웠던 시절에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건너가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경험했던 이야기를 두고두고 한다. 열악한 산업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산업재해를 당한 어느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TV방송에서 다큐로 만든 것을 보고 슬프기도 하고 이 나라의 국민임이 부끄럽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단지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저임금을 받으면서 인권을 유린당하고 밀린 임금마저 받지 못해서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있고 안전을 무시한 산업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었지만 보상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다.

우리도 한때 독일에 광부로 가고 간호사로 취업을 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누이동생의 학비를 책임지며 멀리 열사의 나라에서 보낸 돈으로 보릿고개를 넘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과 존중과 이해의 벽을 넘지 못하면 이국을 넘나들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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