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다. 현직 장관으로서는 첫 영장집행기록을 세운 조 장관은 구속 직후 사의를 표명했고, 황교안 대통령대행 국무총리는 이날 오후 즉각 사표를 수리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에 대해 “범죄 사실이 소명됐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세 명이 구속돼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의 영장발부는 기정사실로 인식돼 왔지만, 그 충격은 엄청나다. 전현직 장관과 1차관이 구속된 문체부는 대대적 축소 개편이 거론될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나아가 정권의 몰락, 대통령의 탄핵 가결과 민형사상 책임 등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두 사람의 구속은 박근혜 정권의 성패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김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 최고의 실세로 꼽혔던 인물이다. ‘왕 수석 ’‘기춘대원군’ 등 별명에서 보듯 2인자의 위세를 떨쳐온 김 전 실장은 최순실 게이트 특검에 몇 차례 소환됐으나 검찰청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경력에 걸 맞게 수사팀의 예봉을 잘 피해나가 ‘법꾸라지’라는 새 별명이 붙었다. 노회한 법 전문가도 블랙리스트는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그는 여생을 편하게 지내야 할 70대 중반의 나이에 13살이나 연하인 여성 대통령의 비서실장 자리를 수락했다.그를 기용한 데에 대해 비판도 많았고 노욕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막강한 권세를 과시하며 나름대로 대통령에게 충성은 했겠으나, 무명에 가까운 ‘문고리 3인방’의 권력에는 미치지 못했던 듯 그들은 국정을 농단했다. 언론과의 소통은 거의 전무했다.

김 전 실장이 국가의 원로로서, 청와대의 2인자로서 본연의 역할을 다했다면 지금과 같은 정권의 참담한 패망은 방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고리 3인방과 적당히 타협해 그들이 쳐놓은 인의장막을 걷어내지 못한 죄는 용서받기 어렵다. 최순실의 존재를 충분히 인지했을 터인데도 방관한 잘못 또한 그에 못지 않게 크다. 옳바른 가치관의 소유자라면 도저히 용납해서는 안 되는 비정상적인 것들이었다.

조 전 장관은 현 정권 출범과 함께 여성가족부 장관에 임명됐고, 청와대 정무수석에 이어 문체부 장관에 임명되는 등 2장관 1수석의 화려한 관운으로 현 정권의 ‘신데렐라’ 소리를 들은 대통령의 측근이다. 법조인 출신으로 현 정권의 실세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죄질에는 차이가 있다. 특검은 조 전 장관이 김 전 실장의 지시로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에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최대의 잘못은 자신의 전공이 아닌 문화예술계 ‘공작’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지시한 자가 대통령이든 실세 비서실장이든 그런 요구 자체를 거부했어야 옳다. 이제 공은 박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개입한 적 없다는 해명이 나왔으니 특검의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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