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이 길은 수년전에 아들을 수없이 면회 다니던 길이어서 행복한 기억을 추억하게 했다. 달리는 차 창밖의 풍경은 추억의 책장 한 페이지씩을 넘기듯이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수년전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시간은 빠르게 많이도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 산에 희끗희끗 잔설은 염색할 때를 놓친 내 머리와 흡사하다. 겨울 한가운데도 푸르른 소나무처럼 내 마음은 아직 푸른데 내 나이 시간의 속도는 달리는 차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오늘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기간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모두들 어떻게 변해있을까!

 집안에 애경사 때만 만날 수 있는 동기간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속속 달려와 서로 손을 잡고 얼싸안으며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반갑고 살갑다. 학교를 다니던 어린 조카들은 몰라 볼 만큼 장성한 청년들이 되어 있어서 대견하고, 고와서 생전 늙지 않을 듯싶던 숙모님이 이제 염색을 포기 하실 만큼 어쩔 수 없는 세월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애잔했다. 이젠 고인이 되셔서 함께 자리를 하지 못하신 아버지 자리에 오늘은 고모님이 앉아 계신다. 오늘은 집안에 제일 어른이시다. 세월 속에서 세대가 바뀌어가고 있었다. 불호령을 하시면서 집안의 법도를 지키시던 어르신들은 차례로 고인이 되셨고 그분들의 손과 손이 또한 많이도 탄생을 하였다. 격세지감을 느꼈다.

 몇 번의 사업 실패로 한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사촌 동생이 가족들과 함께 뒤늦게 모습을 보였다. 누구보다도 반가운 얼굴이다. 어깨를 감싸고 귀엣말로 "넌 꼭 한번 대박 낼 거야!" 라고 말해줬다. 환한 웃음으로 화답을 해주었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착하던 사촌동생이 이젠 중년의 남자가 되어있다. 누구보다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았기 때문에 그 꿈으로 가는 길이 험난했으리라고 생각하니 축 쳐진 어깨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이 대소사에 나타나준 의연함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코 흘리던 조카가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든든한 신랑의 어깨에 기대어있다. 결혼식을 하는 동안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박수를 보내고 축하해 주는 이들도 가족들이다. 예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을 찍을 때에 어느 한 자리라도 비집고 들어가서 '김치' 하고 함께 웃는 것이 가족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가족이라고 했던가! 누구보다 사랑하고 때로는 미워도 하면서 가끔은 두 번 다시 안볼 것처럼 담을 쌓고 살기도 했었다.

 궂은 날 비를 피하려고 큰 나무 아래로 모이듯이 그늘이 필요할 때에도 어김없이 한 뿌리를 내린 큰 나무 아래로 모여들어서는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눈다. 홀로 피어있으면 볼 품 없는 꽃, 무리지어서 함께 피어있으면 아름다운 꽃처럼 가족은 그런 것 이다. 함께 바람도 막으며 흔들리지 않으려고 의지하며 피어나는 것이 가족이다. 돌아오는 길에 손 전화에 문자 들어오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사촌동생이다. "누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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