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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유의 사이언스 - 금속활자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윤용현  |  news@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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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6.21  17: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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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쇄문화의 획 긋다

▲ © 충청일보

우리는 현재 정보의 고속도로에 살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정보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다양한 정보가 축적, 가공, 유통됨은 물론 시공간을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정보의 이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 새천년에 인류역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금속활자를 선정한바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금속활자의 발명이 책의 정보를 손쉽게 복사할 수 있는 간편성으로 지식의 보편화를 가져와 정보의 대량유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자 혁명으로 일컫는 금속활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1377년)을 청동 활자로 찍어 낸 한국인!

우리민족의 금속활자의 발명은 우연히 아닌 필연이었다.

그것은 이미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705∼51)을 만든 인쇄기술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나말여초엔 대형의 철불상을 한번에 주조할 수 있는 철 주조기술이, 고려시대에는 종이(한지), 잉크(기름 먹), 주조(鑄造) 등 금속활자 인쇄를 가능하게 한 기술적 조건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축적과 시대적인 여건의 토대 위에 드디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기록상)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1232년 이전)' 의 인쇄가 진행되었으며, 1234년경에는 주자(鑄字)를 사용한 '고금상정예문' 이 간행되었다.

더 나아가 고려말기에는 현존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 를 지방인 청주 흥덕사에서 주조할 정도로 인쇄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금속활자 기술이 그대로 이어져 세계 인쇄문화사상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획기적으로 발전되었다.

조선 태종은 주자소를 설치하고 사형(砂型) 주조한 '계미자(1403년)' 로 많은 책을 인쇄해 지방에 널리 보급하였다.

금속활자와 조판기술의 개량에 열의를 갖고 있던 세종은 '경자자(1420년)' 주조와 활판 작성의 규격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조선 초기의 금속활자 등은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빠른것으로 세종대의 천문 역학서 등 방대한 양의 책 간행에 크게 기여하였다.

나아가 조선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당대 세계 최고의 하이테크 기술로서 중국, 일본 등 동양인쇄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스위스 바질의 인쇄박물관에서 접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서울디지털포럼 2005' 에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당시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교황사절단을 접촉하고 그들이 기록한 금속활자의 그림과 설명서에서 값진 정보를 얻었을 것' 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한국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술과 최고의 정보기술로전 세계에 두 번이나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극찬하였다.

정보전달의 혁명이라고 일컫는 '금속활자' 와 '디지털정보화' 를 우리민족이 주도하여 인류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인정한 대목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겨레가 독창성을 발휘하여 이룩한 금속활자 발명과 관련된 기술 또는 생각이 중국 아라비아 유럽 등지로 전파되어 타자기를 거쳐 컴퓨터가 나오게 된 바탕을 이루었으며, 현재의 정보화시대를 여는 첫걸음이자 뿌리가 된 것이다.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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