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여섯 살 차이가 나도 같이 늙어가니 조카님이라 부른다. 우리남매와는 한가지처럼 자란 작은조카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어렵게 공부하여 취직을 했었다. 얼른 성공하려는 마음으로 퇴사 후 사업에 뛰어들었다. 비빌 언덕이 없어선지 잘 풀릴듯하면 헛디디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니 사람 하나만 보고 결혼한 조카며느리의 고단한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 조카는 자신이 청소년기에 겪었던 암담함을 잊을 수 없어 수입의 십프로를 기부한단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그렇게 해 왔다는 조카의 말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나 또한 중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었다. 그때 어느 목사님이 보내주신 책이며 수학여행 경비를 잊지 못한다. 고아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목사님은 자신도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된다고 말씀 하셨다. 나도 어른이 되면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지 했었다.

세월이 흘렀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했으며 두 아이를 두었다. 아이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단거리 선수처럼 힘껏 내달렸다.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갖지 못했으니 돌부리에 넘어진 친구가 있는지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그렇다고 기부를 안했던 것은 아니다. 남편이 도움이 필요한곳에 형편 될 때마다 조금씩 했었다. 나도 소액이지만 매달 정해진 금액을 단체에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조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가슴이 까끌 거린다. 가끔은 진심보다는 어쩔 수없이 등 떠밀려서 내밀기도 했고 체면치레로 기부를 했던 적도 있었다. 언제나 내 가정이 먼저였고 그건 당연하다고 여겼다.

조카부부에게 부끄러워졌다. 지금이야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어려운 시절에도 기부를 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니 이제는 존경의 마음을 더해 조카님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조카님의 봄은 오래도록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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