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그래 나도 여자라고 때론 화려한 장미이고 싶은 날이 있다. 찬 없는 날 상추쌈 한 닢도 되지 못하고 한여름의 구멍 난 난닝구 한 장도 되지 못하는 쓰잘데 없는 장미 한 다발 선물로 받고 싶은 날도 있다. 단체 대화방에 그림으로 전해주는 장미꽃다발에도 흐뭇한 날이 있다. 신새벽을 여는 손길이 한없이 초라하고 한없이 남루한 나날도 있었다. 나무 등걸 어딘가에 붙은 검불처럼 거뭇한 날도 있었다.

 어느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이 꽃이라면 구절초나 콩꽃 팥꽃이면 좋겠다고 한다. 가을 한철 소담한 국화도 아니고 꽃피우는 일이 사는 일의 전부인 콩꽃 팥꽃이면 좋겠다니, 이미 많은 여자들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국화도 아닌 콩꽃 팥꽃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해 뜨고 지는 일에 흔들리고 꽃피우고 열매 맺는 일 밖에는 모르는 여자가 사랑스럽다면 세상에 사랑스럽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화려한 장미보다 소박한 것이 우아한 것이라고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나를 위로했던가. 그러면서 장미를 바라보지 않았던가. 콩꽃 팥꽃도 꼬투리 주렁주렁 매달고 찬바람에 휘청거리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노을을 바라보면 그 고운 빛으로 물들고 싶지 않겠는가. 이제 지천으로 꽃은 필 것이고 얼굴에 꽃물 든 사람들이 또 다른 꽃이 되어 넘치게 피어날 텐데 하얗게 머리 센 사람들은 뒤켠으로 밀려나 서성이겠지. 나도 그렇겠지.

 며칠 전 겨울 외투를 입고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 겨울 외투로 다시 갈아입고 오면서 벚꽃이 만개한 것을 보았다. 내가 비워둔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갔고 꽃이 피고 비가오고 바람은 꽃을 지우고 잎을 그려내고 있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화려하고 우아하게 흘러갈 것이다. 해마다 보는 꽃구름, 해마다 하는 꽃멀미, 해마다 설레고 해마다 서러운 봄볕이다.

 우아함과 화려함의 경계를 나는 알지 못하겠고 벚꽃이 우아한지 화려한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화려한 날을 찾지 못하여 잠시 화려를 꿈꾸어 봤는지도 모르겠다. 한번쯤 화려해 보고 싶은데 이제 가망이 없다는 뜻인지 사람들은 우아해져야한단다. 우아는 어디서 파는 건가. 시금치 한 단 사듯, 광목 한 필 끊듯 어느 곳을 뒤져봐야 찾을 수 있는 것인가. 콩꽃 팥꽃인 내가 말이다.

 겨울과 봄의 경계를 어디라고 해야 하나, 어디에 금 하나 그어 놓고 너는 겨울이고 나는 봄이라고 해야 하나. 무심천 봄밤에 하얗게 그어 놓은 꽃금이 경계로구나. 매일 추위에 웅크리던 너와 내가 폴짝 꽃금을 넘어왔구나. 나는 춥지 않겠구나. 한겨울 식혜단지에 와르르 몰려다니던 얼음 조각들처럼 나는 서걱이지 않아도 되겠구나. 꽃잎이 내려앉은 어깨를 털며 봄 한철 우아해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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