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있다. 길을 가다보면 수많은 일들을 보고 듣고 겪으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살다보면 좋은 일, 슬픈 일, 기쁜 일, 가끔은 오해도 생기고 때론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한다. 그런 모든 일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기에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렵고 어려우면서도 수월할 때도 있다. 관점이 다르니 서로 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일이 그리 녹록치 만은 않다.

 우연히 화분을 선물 받게 되었다. 난도 아니고 옥수수 잎을 닮은 것이 볼품이 없어 베란다 구석에 밀쳐놓고 이내 잊어버렸다. 햇살이 따뜻해지면서 화분에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영산홍은 화사하고 하얗게 핀 석란은 단아한 듯 청순한 이미지에 향기마저 그윽하다. 헌데 그녀는 그냥 옥수수 같아서 물도 주지 않고 영산홍과 석란만 보듬고 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조용히 꽃 대궁을 밀어 올리기 시작했다. 미끈하게 뻗어 올린 꽃대에서 꽃망울이 터졌다. 새벽이슬을 펼쳐 놓은 듯, 여리고 흰 꽃잎이 살포시 속살을 드러냈다. 명주보다 더 고운 날개를 하늘로 드리워, 푸르고 시린 하늘로 홀연히 날아오를 것만 같다.

 난이 청초하다면 영산홍은 화려함이 호들갑스럽다. 허나 그녀는 호들갑스럽지도 속되지도 않았다. 청초한 듯 요염하고 자태는 우아함이 학보다 더하니 그녀가 문주란이다. 어리석었다. 때를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지 못해 언제나 외형만으로 먼저 판단하고 평가하는 우를 범한다. 꽃들은 먼저 꽃을 피웠다고 으스대지 않는다. 제 자신이 화려 하다고 아름답다고 요란도 떨지 않았고 제 자신 볼품없다고 다른 꽃을 보고 시기, 질투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아름다움에 소란을 떠는 일은 언제나 사람들이 한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