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제 완연한 봄이다. 앙상한 뼈대만을 드러냈던 나무들도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자신의 풍성함을 자랑한다. 이처럼 봄은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가져다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옴과 동시에 사람들은 또 다시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고 다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출발은 출발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인가 새로움을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시작보다는 그 끝에 이르는 결과로 가득할 것이다. 지금 새롭게 시작하는 여러 일들을 통하여 바뀌게 될 내 인생의 모습 말이다.

 결국 우리의 시작은 우리의 끝으로 인해 그 의미를 가진다. 시작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우리 옛말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시작만 하면 그 일의 절반을 이미 이룬 것과 마찬가지로 시작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 '시작은 아무리 잘 춰줘도 그 일의 절반의 가치 이상은 줄 수 없다' 결국 아무리 좋은 시작이라도 그 일의 결과를 온전히 경험하기 전까지는 아직 자신의 계획을 절반밖에 이루지 못한 것이다. 결과 없는 시작은 그 한계가 딱 절반까지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봄은 그리고 시작은 자연스럽게 그 시작이 가져올 결과와 필연적으로 연결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의 여러 유동적 조건들이 변수가 되기는 하지만, 특별한 일을 제외하면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결과를 목표로 우리는 늘 새로운 시작을 계획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새로운 시작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작이 가져올 결과인가? 어떤 이들은 아무리 그래도 당장 무엇인가 시작한 그 새로운 시도가 우리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더 많이 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도가 이미 결과를 염두에 둔, 미래의 목표를 전제한 시도라면, 그 일의 결과에 대한 기대 없이는 시작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결과에 대한 기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봄은 결실의 계절 가을을 바라보는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의 소망을 새롭게 품는 시기인 것이다. 즉 우리의 지금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당장의 환경이 아닌 지금의 노력이 가져올 미래의 결실임을 기억하라. 지금 내 손에 아무것도 쥔 것이 없는 이유는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이다.

 봄이 시작되었다. 이 시작의 계절에 여러분이 꿈꾸는 결실은 무엇인가? 어떤 결실을 기대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무엇이든 시작하라.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가을의 결실을 마음에 품어라. 결실을 향한 마음의 소망은 곧 지금 당장의 나의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될 것이다. 주변을 돌려보며 과정을 걱정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결실을 향한 명확한 확신만 있으면 지금 당장 시작을 위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을 만드는 것은 주어진 환경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열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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